국제시장-깡통시장서 부산의 참맛에 빠지다
황령산의 정상(해발 427m)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산의 바다쪽 시가. 왼편 다리가 광안대교이고 오른쪽 다리가 지난달 22일 개통한 부산항대교다. 그 다리 너머가 영도. 부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부산 골목투어의 ‘이야기 할배’ 문태광 씨.
부산을 내려다보다
오전 9시. 예약한 등대콜부산의 개인택시로 부산취재에 나섰다. 렌터카 대신 택시를 택한 건 편리함 때문. 지리도 서툰데다 주차 신경 안 써도 되고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고…. 등대콜은 여러 고민을 해결해주는 좋은 솔루션이다. 기사 이형도 씨는 “시간과 경비절약은 물론 관광지와 맛집까지 안내하는데 반응이 의외로 좋다”며 “시간당 2만 원의 비용도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추천대로 먼저 황령산(427m) 봉수대에 올랐다. 이곳은 초행인데 올라서 보니 부산여행길에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이었다.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다. 북으로는 김해 낙동강과 서면, 동으론 달맞이고개와 동백섬, 남으로는 영도와 북항 주변 도심과 부두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항대교와 광안대교, 부산대공원까지 조망된다. 1592년 4월 14일 부산포를 침입한 왜군선박을 발견해 봉수로 임진왜란을 한양에 처음 알린 곳도 여기다. 등대콜 택시는 봉수대 바로 밑까지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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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의 어제와 오늘
매일 정오부터 15분간 다리를 들었다가 내리는 영도대교의 도개된 모습.
우린 영도대교로 걸어갔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교통통제가 시작됐다. 다리는 시침이 정오를 가리키자 들리기 시작했다. 다리 양편엔 관광객 수백 명이 운집했다. 완전히 들린 다리의 각도는 58도. 4분 30여 초가 걸렸다. 다리가 개통된 건 1934년. 찻길과 전찻길이 부산과 영도를 이어주었다. 그 다리 밑엔 피란시절 성업했던 점집이 아직도 남아있다. 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산대교’였다. 그런데 1980년 새 다리에 그 이름을 빼앗겼다. 그때 얻은 새 이름이 영도대교다. 그런데 부산시는 이마저 가져가려 했다. 최근 완공한 ‘부산항대교’에 불일 이름으로. 하지만 영도주민은 거부했다. 두 번씩이나 빼앗길 수는 없어서다.
영도대교를 건너 근방의 부산삼진어묵을 찾았다. 지난해 단장한 3층 건물외벽에 쓰인 ‘Since 1953’(1953년 창업)이 눈길을 끌었다. 출입문 벽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제조가공소‘라는 명판도 붙어있다. 부산은 한국인의 애호식품 어묵의 발상지. 그리고 그 부산어묵의 탄생지가 여기다.
국제시장 골목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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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여러 골목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아리랑골목의 앉은뱅이 좌판식당. 잡채국수 충무김밥 단술 등을 저렴한 가격에 맛본다.
투어의 시작점은 남포동초입(자갈치시장 건너)의 비프(BIFF)광장. 196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당시 유명 배우와 감독의 핸드프린팅으로 장식한 바닥이 있는 곳이다. 이곳엔 씨앗호떡 노점들이 진을 치고 있다. 호떡시식은 골목투어의 시작을 상징하는 의식과 다름없다. 그 이름은 속에 넣은 씨앗에서 유래했다.
한때 ‘도떼기시장’이라 불렸던 국제시장. ‘도매로 떼어가기’의 줄임말인 듯 추정되는데 그러나 그건 그저 말뿐. 실은 미군부대에서 빠져나온 거래금지의 군수품이든 뭐든, 원하는 것은 모두 구할 수 있고 또 판다는 의미가 함축된 이름이다. 그 시작도 인상적이다. 2차대전 종전 후 패전한 일본의 부산거류민이 개수 제한으로 귀국선에 실을 수 없던 물건을 내다판 게 계기. 굴곡진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장소다. 시장은 21세기 풍정까지 담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허다한 이름의 시장골목이 그 유산이다. 먹자골목, 젊음의 골목, 만물골목, 아리랑골목, 케네디골목, 갈비골목….
내가 찾은 곳은 ‘아리랑골목’. 앉은뱅이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는 좌판이 수십 m나, 그것도 골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나도 앉아 이곳 명물인 잡채국수(2000원)를 시켰다. 피란시절 음식인지라 맛도 영양가도 평가할 계제가 못됐다. 그럼에도 맛볼 이유는 충분했다. 만드는 이나 맛보는 이나 맛으로 먹지 않고 역사를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없어지면 아쉬워할 맛으로서…. 깡통시장이란 이름은 유통기한이 지난 수입식품(깡통들이)을 쌓아놓고 팔던 데서 유래했다. 여기에도 먹자골목이 있어 온종일 붐빈다. 그런데 요즘은 밤에도 찾을 이유가 생겼다. 동남아출신의 다문화가정 주부가 즉석요리를 하는 야시장(오후 6시∼밤 12시)이 서기 때문. 음식은 1000∼3000원으로 저렴하다.
▼ 부산삼진어묵… 국내 최초의 어묵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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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내 영도에 있는 부산삼진어묵 전시장 실내.
부산삼진어묵
때는 1953년. 전투경찰로 지리산토벌대 활동을 마치고 귀향한 박재덕 씨(작고)는 영도부둣가의 옛 일본도기회사 창고에 어묵공장을 차렸다. 영도다리 밑 점쟁이로부터 ’사업하면 성공한다‘는 점괘를 전해 듣고 금반지 금비녀를 팔아 시작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피란민과 영도포구에 널린 신선한 수산물, 때마침 개설된 공설시장(현 영도봉래시장)…. 이 궁핍의 시절에 피란지 부산에서 어묵은 싸고 영양가 있는 단백질 섭취원이었다.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더불어 공장도 커져갔다. 그런 어묵이 국민식품 반열에 오른 건 1970년대 참새사냥 금지 이후.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대표 안주가 참새구이에서 꼬치어묵으로 바뀌면서다.
박 씨는 부산어묵 선구자, 삼진어묵은 대한민국 어묵의 최초브랜드다. 부산어묵은 1900년대 초 부산에 발을 들인 일본인의 ‘가마보코(어묵)’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스시를 본뜬 김밥이 한국음식이 됐듯 어묵 역시 1세기만에 가마보코와 차별화된 우리 고유음식으로 변신했다.
부산삼진어묵은 아들과 손자로 대물림 중이다. 아들 박종수 대표는 “부드러운 일본 것과 달리 부산어묵은 탱글탱글하고 씹는 식감이 강하다”며 “최근엔 이걸 찾는 일본인도 늘고 있다”고 했다. 삼진어묵의 주재료는 미국산 명태. 살만 발라내 콩기름에 튀긴다.
삼진어묵 전시관에선 다양한 수제어묵을 살 수 있다. 가격은 대개 500원인데 즉석 어묵고로케(크로켓)도 있다. 051-416-5466
옛날국수
영도봉래시장의 옛날국수 주인 황부시 씨가 국수건조대 앞에 섰다.
옛날국수는 이름그대로다. 뽑는 것까지도 옛날 그대로여서다. 그 기계는 내가 어린시절 보았던 그것이다. 건조장은 2층 옥상의 창고. 황 씨는 매일 막대에 건 국수 가락을 좁은 계단으로 운반해 말린다. 국수 한 다발(850g)은 2250원. 가게는 영도봉래시장 안에 있다. 051-416-8860
■Travel Info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오션스파 씨메르. 해운대비치로 돌출한 옥상에 있어 바다와 하늘을 두루 조망하며 휴식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제공
◇부평깡통시장: 지하철1호선 남포역 5번 출구. 야시장은 오후 6시∼밤 12시 ▽영도 봉래시장: 점포 125개, 주차장 있음. 영도구 봉래동3가 13-3. 051-413-3111
◇롯데백화점(광복점):지하철1호선 남포동역 10번 출구. 051-678-2500
부산 원(原)도심 근대역사 골목투어: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www.bto.or.kr)가 근대역사문화 자원과 맛집, 볼거리, 쇼핑을 연계해 만든 옛길걷기 여행(무료). ‘이야기 할매(할배)’라고 불리는 토박이 스토리텔러가 직접 안내한다. 주말마다 운영하며 10명 이상 신청하면 주중에도 수시로 출발.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신관:아르데코(Art Deco)양식으로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지난달 개장. 화장실을 분리한 욕실에선 바다가 조망되고 확장(50%)된 공간에 소파베드를 둔 프리미엄 딜럭스 객실(3, 4인 가족용)이 돋보인다. ◇오션스파 씨메르(Cimer):해운대비치로 돌출한 옥상의 야외스파. 바다와 하늘, 바람을 두루 즐기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어트랙션이다. 객실에 씨메르 이용을 포함한 ‘다이내믹 힐링 패키지’는 21만 원(주중 본관 디럭스룸 기준)부터. 051-749-2111∼3. www.busanparadisehotel.co.kr
부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