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머리 좋은 검사들이 왜 아직도 못 잡고 있느냐는 질타를 받고 있는 검찰로서는 복장이 터질 일이다. 알고도 못 잡는 그런 일도 없겠거니와 선거일 직전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검거할 것이라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검경 추적팀이 유 전 회장 검거를 위해 주로 활용하는 기법은 유 전 회장이나 그를 돕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승용차를 폐쇄회로(CC)TV로 추적하는 것과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는 것 등 두 가지다. CCTV 추적기법의 경우 고속도로 요금소에 차량 번호를 입력해놓으면 자동으로 해당 차량이 지나간 것이 확인된다. 또 한 곳에서 지나간 흔적이 보이면 주변 일대의 CCTV를 다 뒤져서 이동경로를 쫓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국의 모든 길목에 야간에도 또렷하게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촬영이 되는 고성능 CCTV가 설치돼 있지는 않은 데다 기본적으로 뒤를 밟는 방식이니 시간차가 생기게 된다. 유 전 회장이 탄 차량이 지나간 흔적을 확인하더라도 이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뛰는 검찰에 나는 유병언’이라고 하지만 이는 당연하다. 종교적 신념으로 뭉친 신도들의 조직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도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검찰과 경찰 수백 명, 수천 명을 동원한들 붙잡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심지어 신도들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무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철저하게 상대의 허점을 알고 지능적인 도피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차제에 휴대전화 감청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휴대전화 감청을 통해서만이 유 전 회장이 미리 어디로 갈지 예측이 가능한 단서를 잡을 수 있고 그래야만 검거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휴대전화 감청은 2005년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사건이 불거지면서 아예 말도 꺼내선 안 되는 사안처럼 돼 있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만약 소형 핵무기를 가진 테러범이 유 전 회장처럼 도주극을 벌이고 있다면 어땠을까. 치안이 튼튼한 한국에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국민 다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범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을 꽁꽁 묶어둬서는 곤란하다. 8월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9월에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당국으로서는 알게 모르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테러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휴대전화 감청은 거론 불가’라는 게 기존의 사회적 합의라면 이제 재고해야 할 때가 됐다. 감청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불법 감청을 했을 때에는 말 그대로 징역 100년까지 처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제어장치를 둔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나저나 유 전 회장이 이번 지방선거 투표는 했는지 모르겠다. 도주 중이니 투표를 했을 리는 만무하다. “이 나쁜 사람이 말이야. 투표권은 행사하지 않고 도주권만 행사하고 있으니….” 한 검찰 고위 간부의 푸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