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도시 지는 국가/벤자민 바버 지음·조은경 최은정 옮김/584쪽·2만8000원·21세기북스 ◇작은 도시 큰 기업/모종린 지음/300쪽·1만4000원·알에이치코리아
하지만 최근 연달아 나온 ‘뜨는 도시 지는 국가’와 ‘작은 도시 큰 기업’을 읽는다면 이런 생각이 조금은 바뀔 듯도 싶다. 사실 두 책은 선거나 정치 관련 서적은 아니다. 담고 있는 내용도 결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왜 중요한지, 거창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생활 속 실천에 따른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봄 직하다.
먼저 미국 뉴저지 주 럿거스대 명예교수인 노장 사회학자가 쓴 ‘뜨는 도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누구나 인식하듯, 현 지구는 기후변화와 민족·종교 갈등, 테러와 빈곤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더이상 국가(혹은 정부)는 이를 해결하거나 조율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책상머리에서 입씨름이나 하는 정부 간 국제기구에도 기대할 게 없다. 더이상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한계에 봉착한 국가를 뛰어넘는 ‘도시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시란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를 갖출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리함을 이겨내고 독자적 균형을 이뤄낸 건 ‘도시’라는 유연성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북스 제공
실제로 최근 ‘세계 도시 네트워크’는 상당히 활발하게 작동 중이다. 지난해 서울이 사무국을 유치해 화제를 모았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간 지방정부연합체인 시티넷(CITYNET)을 비롯해 다양한 도시 연합기구들이 가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경제는 물론이고 환경과 안보 같은 이슈에서도 느릿느릿한 국가 연합체에 비해 신속하게 합의를 이뤄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각 도시로 적용하는 과정도 아무래도 정부보다는 체감속도가 높다.
스위스 소도시 브베의 레만 호수엔 찰리 채플린 동상과 포크를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 도시는 배우인 채플린이 생애를 마친 곳이자, 포크가 상징하는 세계적 식품회사 네슬레가 탄생한 땅이다. 소박하되 자연친화적 삶을 중시하는 브베 스타일은 네슬레의 기업이념에 영향을 끼쳤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의 본사가 있는 스웨덴 알름훌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총 인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지만, 근검절약과 실용주의 정신을 최고 미덕으로 치는 곳이었다. “저렴하고 실용적이며, 단순하면서 깔끔한” 이케아의 기업문화는 바로 대대로 이어진 도시의 생활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타벅스가 탄생한 미국 시애틀이나 프랑스 항공 산업의 허브가 된 툴루즈 역시 지방도시와 기업이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한 본보기다.
하지만 이미 현대사회에서 도시 인구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개발도상국은 78%)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원칙에 얽매이는 동안, 시장(市長)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제언은 참 의미심장하다. 오히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도시 문제에 훨씬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목소리만 큰 사람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앞마당을 쓸고 닦을 인재를 뽑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