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낸 문훈-오영욱 ‘건축 이야기’
문훈 씨의 ‘파라다이스에서’. 초대형 찜질방을 상상해 그렸다. 문 씨는 “그림을 볼 타인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인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적잖다. 구석구석에 실현 불가능한 욕망의 형상을 뿌려놓는다. 대개는 설명해줘야 겨우 알아챈다”고 했다. 스윙밴드 제공
한 번쯤 꼭 듣는 말이다. 건축가 문훈(46) 오영욱(38) 씨는 그런 의기소침을 털어내 줄 선배들이다. 두 사람은 건축과 더불어 ‘그림’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다. 서울 상상사진관으로 2005년 건축가협회상을 받은 문 씨는 2009년 건축과 교수들이 선정한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12인’에 들었다. 독특한 그림의 건축여행기로 ‘오기사’라는 필명을 알린 오 씨는 2007년 사무소를 내고 또래보다 몇 발 앞서 폭넓은 작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첫 그림책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을 펴낸 문 씨와 다음 달 7번째 그림책을 내는 오 씨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달로 가는…’ 문훈씨
▽오영욱=그림은 세상을 보는 내 방식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도구다. 보잘것없는 나란 존재가 세상과 맺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그림에서 풀어내려 한다. 그래선지 멋진 풍경이나 상상을 그릴 때도 예전의 실수, 슬픔, 고통이 떠오른다. 얼핏 행복하고 귀엽게 보이는 그림이지만 늘 그런 나름의 고민을 담는다.
7번째 그림책 오영욱씨
▽문=글쎄.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 뭘 그린다고 욕망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면 그저 너무 피곤하다. 상(像)이 맺혀 펜을 들지만 시작하면 늘 ‘이거 노동이구나’ 싶다. 흐릿한 이미지를 실재하는 그림으로 만드는 데 8, 9시간 든다. 펜으로 종이 구석구석을 정성껏 매만지는 작업이다.
▽오=내게 그림은 공간의 재현과 기록이다. 거의 현장에서 그린다. 보통 서너 시간 한 장소에 꼼짝 않고 앉아 그린다. 그래서 물을 잘 안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화장실 안 가려고.
소설 ‘타워’(배명훈 작·2009년)에 삽입된 오영욱 씨의 그림. 오 씨는 “높이 2408m, 674층의 세계 최고층 빌딩이 인구 50만 명의 도시국가 ‘빈스토크’를 이룬다는 설정을 읽고 몽롱한 이미지의 가상공간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oddaa 제공
▽문=공간과 그림의 간극은 당연하다. 굳이 메울 필요 없다. 그림에서 파생한 아이디어는 건축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자연히 현실적으로 ‘번역’된다. 건축은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아무리 이기적으로 ‘내 것’을 하려 해도 저절로 사회화된다. 기본적으로 남의 돈으로 하는 일이잖나. 모든 작업 과정에서 법규를 따지고, 어디서든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굳이 일부러 염두에 두지 않아도 공동의 이익을 고민하게 만든다.
▽오=건축의 그런 면이 그림에 비해 답답하지 않나.
▽문=제약이 분명한 가운데 답을 찾는 과정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억압이라 여겨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예상 밖의 뭔가가 나타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