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문을 연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중현 씨(79)가 현장을 다시 찾기까지 꼭 34년이 걸렸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골목길에서 2구의 주검을 보고 곧바로 시위에 뛰어들었다. 그는 10일간의 항쟁 기간 버스에 시민군을 태우고 다니다 연행돼 고문을 받았고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지금까지 광주에 살고 있지만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그곳’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날의 현장’으로 그를 이끈 것은 ‘광주트라우마센터’였다. 2012년 10월 광주 서구 치평동에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치유 공간이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계엄군의 진압 전날인 5월 26일 밤 옛 전남도청을 빠져나온 최용식 씨(59)는 망월동 5·18 옛 묘역의 슬픔을 앵글에 담았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시 받은 고문의 후유증과 동료들과 사수하던 전남도청을 먼저 나온 죄책감으로 약물치료를 받아 왔다. 카메라로 현장을 찍은 뒤 술을 따르고 제를 올리니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최 씨는 “사진을 통해 상처와 마주하고자 하는 마음의 힘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인공 1명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함께 상처를 치유하는 ‘마이데이’ 프로그램도 있고 피해자를 개별적으로 상담해주기도 한다. 원예 미술 음악 몸동작 등 예술치료, 물리치료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5·18 피해자 및 가족 300여 명이 2000여 차례 참여했다. 조작된 간첩사건에 연루돼 14년 동안 복역한 강용주 씨(52·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트라우마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는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보듬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트라우마센터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정승호 기자 shju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