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라, 우리 마을. 이곳을 설명하는건 음악 없이 춤을 추는 것과 같다. ―길버트 그레이프(피터 헤지스·호메로스·2014년)
춤을 춰본 사람은 안다. 춤은 온몸으로 듣는 음악이란 걸. 그런데 음악 없는 춤이라니. ‘길버트 그레이프’는 이 답답함의 힘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자살 후 칩거와 폭식으로 ‘고래’가 돼버린 엄마, 장애아로 태어나 기적같이 18번째 생일을 코앞에 둔 모자란 동생. 길버트는 그런 가족의 질곡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지만 “절대로 가족을 떠나지 못하는” 너덜너덜한 24세 청년이다.
음악 없는 춤은 부자연스럽다. 인구 1000명 남짓, 좀이 쑤시는 주말 밤을 견뎌야 하는 시골 엔도라에서 살아가는 길버트의 생활도 그런 부자연스러움의 연속이다. “걸어 다니는 혼수상태”라는 표현이 그의 처지를 짐작하게 한다.
길버트의 춤은 과체중의 엄마와 자신을 따르는 모자란 동생 사이에서 비틀댄다. “가족이라는 말은 다른 집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길버트는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염원하며 신형 마트에 떠밀려 금세 사라질 것 같은 마을광장의 오래된 식료품점에서 일한다.
흥청망청 신명 나 보이던 대한민국도 홀연 음악이 끊겼다. 잔인한 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도 음악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어색한 몸짓을 살아 꿈틀거리게 할 음악이 과연 가능할까.
박유안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