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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유엔도 울리는 北인권 수호천사

입력 | 2014-04-15 03:00:00

① 원재천 한동대 교수가 본 호사냑 北인권시민聯 부국장




《 동료, 스승, 가족이 쓰는 ‘100인 이야기’를 6회에 걸쳐 싣습니다. 올해 선정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의 숨겨진 모습이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 공개됩니다. 단순한 일화에 그치지 않고 독자 여러분과 우리 사회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시사점을 함께 제시할 예정입니다. 》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이 2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사무실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원재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

‘별에서 온 수호천사.’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40)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폴란드 출신인 요안나는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북한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1, 2년도 아니고 10년째다. ‘별에서 온 것처럼’ 외모도 천사 같지만 북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아름답고, 업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안나는 바르샤바대에서 한국어문학을 전공했다. 그 전공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간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주(駐)폴란드 한국대사관에서 4년간 근무했고 헬싱키 인권재단의 6개월짜리 인권 과정도 이수했다.

200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북한 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 코디네이터로 참석한 요안나는 북한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그 자리에서 스카우트해 한국에 오게 됐고, 이후 줄곧 북한 인권을 위해 힘쓰고 있다.

북한 인권 운동에서 요안나의 성과는 탁월하다. 요안나가 가진 경험과 능력은 한국인이 하기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1989년까지 폴란드는 사회주의 체제였다. 요안나도 사회주의 독재 체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검문과 체포가 일상적이었고, 배급을 위해 가족들이 밤새 줄을 서기도 했다. 아버지는 요안나에게 ‘이런 말은 밖에서 하지 마라’며 입단속하기 바빴다. 어린 요안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요안나는 사회주의 독재의 비인격적 억압과 정치범 수용소 등에 대해 ‘체험적 이해’가 있다. 한국인들이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요안나가 북한 인권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북한 인권 운동에 대해 정치적이나 편협적, 좌우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요안나에 대해서는 그런 색안경을 낄 수 없다. 요안나가 북한 인권 운동을 보편적, 국제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한국인 전문가도 이뤄낼 수 없는 일이다.

북한 인권 운동은 국제사회의 협조가 절실하다. 그런데 요안나가 이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안나는 친화력이 좋다. 유엔기구나 국제 비정부기구(NGO)의 인사들과 초콜릿을 나눠 먹고, 차를 같이 마시면서 북한 인권에 대해 논의한다. 단순히 인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친한 친구로 교류한다. 경조사까지 챙기며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과 어울린다. 주로 유럽인들인 이들과 문화적 공감대가 있고 인종적 배경이 같은 것도 영향이 있지만, 인권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유엔기구나 국제 NGO 인사들은 전 세계의 이슈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요안나의 존재와 노력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요안나는 친화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업무 능력도 갖췄다. 국제회의에선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진지하게 발표하는 연구자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외교관들을 상대로는 ‘3분 스피치’에 요점을 담아 설득하는 전문 운동가이기도 하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요안나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 결의안이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탄생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안나는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북한 인권 운동을 오래 하다 보면 탈북자 등의 고생담을 너무 많이 들어 덤덤해지기 마련인데, 요안나는 매번 눈물을 글썽인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또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민단체 활동가지만 월급을 쪼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걱정하고 용돈을 보내는 효녀이기도 하다. 말 한마디 함부로 하지 않고 어른들에게 깍듯한 예의도 갖춰 종갓집 맏며느리 같은 느낌이 든다.

통일이 되면 북한인권시민연합 평양지부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 요안나. 우리에겐 진정한 복덩이다.

원재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