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그냥 좌절해보는 것도 방법”
경남 창원명곡고 2학년 하예진 양(왼쪽)이 ‘올림픽 6회 출전’ 기록을 세운 이규혁을 최근 만났다.
부모님이 심어준 ‘스스로에 대한 믿음’
이 씨는 초등 1학년 때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1996년에 500m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타고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재능만으로는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빙상선수(아버지는 스피드스케이팅, 어머니는 피겨스케이팅) 출신이라 주변에서 “천부적 재능이 있어 운동을 잘할 것”이란 말을 많이 했어요. 한때 ‘올림픽 메달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따겠지’라고 착각한 적도 있지요.”(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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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양이 그 이유를 조심스레 묻자 이 씨는 “올림픽 무대가 주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올림픽 경기를 앞두곤 ‘이걸 먹으면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될까?’ ‘지금 잠을 자야 하는데 왜 잠이 안 올까?’ 등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컨디션 조절에 방해될까봐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에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부모님이 그에게 심어준 ‘스스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며 자신을 믿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제 경기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이야기하거나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어요. 그 대신 끊임없이 ‘잘했어, 넌 원래 잘하는 아이란다’라며 제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응원해주셨어요.”(이 씨)
올림픽 6회 출전… ‘실패’가 ‘찬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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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이라는 숫자는 ‘실패’ 횟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 숫자 때문에 저를 칭찬을 해주는 걸 보면 굉장히 놀라워요. 올림픽 메달을 따야만 사람들이 칭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이 씨)
하 양이 “실패나 좌절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라고 묻자 이 씨는 “극복하려고 애써 노력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힘들 땐 그냥 좌절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전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 좌절감이 너무나도 컸어요. 한 달 동안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방황한 적도 있어요. 그저 좌절하고 방황할 때도 ‘내가 제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도전하는 거죠.”(이 씨)
글·사진 김은정 기자 ej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