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멍게’ 낸 성윤석 시인
마산어시장에서 일용잡부로 생선을 나르고 손질하는 성윤석 시인. “마산에 내려올 즈음 나는 절벽을 오르다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내게 주어진 고통을 축제처럼 여기며 때로는 고요하고 때로는 뜨겁게 시를 쓰려고 한다.” 창원=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성 시인은 경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하지만 문학판은 도통 재미가 없었다. 산업단지에 가면 가슴이 뛰었다. 부산에서 섬유회사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까닭이라 여겼다. 지방신문 기자, 마산시청 시보 담당 공무원, 장묘사업가를 거쳤지만 화학 실험을 하고 신물질을 개발하는 일이 무엇보다 짜릿했던 그였다.
낙향을 결정한 뒤 시인은 1.5t 트럭을 불러 가진 책을 모두 고물상에 넘겼다. 폐지 값도 안 받았다. 다 망한 마당에 문학이고 뭐고, 전부 다 버리자는 마음이었다.
“처음 몇 달은 ‘철인 14종’ 경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냉동 생선상자 나르다가 꾸벅 졸고, 생선 손질하다가 칼날에 손 베이기 일쑤였다. 생선 가시는 수시로 살을 푹푹 파고들었다. 어느 날은 명태가 때리고 다음 날은 고등어한테 맞고 갈치가 찌르고…. 모든 일을 전천후로 하는 마산 어시장 잡부가 되고선 두 달 만에 14kg이 빠졌다.”
문학은 다 버렸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오전 3시에 일어나 냉동실에서 생선을 꺼내 몇 군데 배달하고 나면 6시. 아침식사하고 또 배달하고 납품 준비하고 점심 먹고 또 상자 나르고 냉동창고 정리하고. 귀신 들린 듯 시가 툭툭 튀어나왔다.
생선상자를 오토바이에 싣고 바닷가를 달리다가, 고등어 배를 따다가, 손님과 싸우다가 언뜻언뜻 시가 지나갔다. 영수증 뒷면, 생선상자 귀퉁이, 주문서의 좁은 여백에 시를 썼다. 바다 냄새 가득한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시가 수북이 쌓였다.
지난해 5∼8월 마산어시장에서 터져 나온 시편들이 최근 출간된 시집 ‘멍게’(문학과지성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어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모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시였고, 어시장 사람들의 애잔한 생으로 시를 짰다. 멍게 문어 상어 해월(해파리) 임연수 호루래기(오징어 새끼)도 등장한다. 마산 어시장 시에선 짭짤한 내음이 풍긴다. 눈물 맛이 난다. 시인은 “내보내지지 않는 어떤 슬픔이 결국은 다시 시를 쓰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창원=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