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HBR]어, 이 회사 보게? 직원들이 자신의 약점까지 공개하네

입력 | 2014-04-10 03:00:00


직원 세 명이 10여 명의 간부에게 둘러싸여 있다. 같은 회사 영화관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다. 영화관에서 현재 추진 중인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의 효과가 지지부진한 까닭을 파악하기 위해 간부들이 마케팅, 정보기술(IT), 운영팀 각 담당 직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간부 그룹 중에는 영화관 사업부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고위 경영진도 포함돼 있다.

잘잘못을 공개적으로 찾아내기 위한 현대판 ‘인민재판’ 아니냐고? 천만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영화관 운영 업체인 디큐리언에선 이를 ‘어항 대화(fishbowl conversation)’라고 부른다. 업무 쟁점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자들의 개인적 문제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마련한 공식적인 토론의 장이다.

고위 간부들은 직원들끼리 진심을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직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맹점이 있고, 어떤 계기로 서로 감정이 상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잘못된 결정을 내렸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합의점을 찾아간다.

디큐리언에서 어항 대화를 실시하는 이유는 뭘까.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연구팀은 회사에서 개인적 약점이나 실수까지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코리아 4월호에 실린 독특한 조직문화 구축 사례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쓸데없는 개인 평판 관리는 가장 큰 자원 낭비

직장인 대부분, 심지어 고성과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매일매일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느라 상당한 에너지를 허비하곤 한다. 바로 본인의 평판을 유지하고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내세우며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는 일이다. 실제로 업무를 하다 보면, 구조적인 이유보다는 자신의 취약점과 결함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연구팀은 이를 “기업에서 자원 낭비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대신 이를 편안하게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훨씬 큰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약점을 감추는 대신 개인과 회사의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인 브리지워터와 영화관 운영 업체인 디큐리언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 개인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 관행

일반 회사에선 어떤 문제의 발생 원인을 분석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객관적 사실’에만 주목한다. 예를 들어 막대한 돈이 투입된 투자 결정이 실패했다고 치자. 대부분의 회사에선 구체적인 데이터, 의사결정 기준, 투자 프로세스 등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를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직원들의 내부 정신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고들지는 않는다.

브리지워터는 다르다. 문제가 되는 투자 의사 결정을 책임진 사람에게 “당신은 스스로 부적절한 결정을 내리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한다. 실패에 대해 특정 개인을 문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의 실패를 조직 차원의 성장 기회로 만들기 위한 물음이다. 단순히 추상적인 질문만 던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직원들 스스로 자신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와 업무 관행을 개발해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리지워터 전 직원은 회사 전체가 사용하는 ‘이슈 로그(issue log)’에 문제점과 실패 사례를 기록하면서 본인이 잘못한 부분을 상세하게 열거한다. 실수를 기록하지 않는 행위는 중대한 직무 태만으로 간주된다. ‘페인버튼(pain button)’이라는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도 따로 만들었다. 회사에서 지급한 아이패드를 통해 언제든지 직원들끼리 자신이 겪은 부정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브리지워터는 이처럼 직원들 사이에 ‘사건의 진상’을 탐색할 수 있는 대화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공식적인 장치들을 마련함으로써 스스로 자기 자신의 문제점과 취약점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 모든 직원이 설계자

디큐리언에선 불과 17세밖에 되지 않은 현장 근무 직원들에게도 손익계산서 읽는 법에 대한 교육을 한다. 극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활동이 극장의 장단기 수익성에 각각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디큐리언은 소위 ‘맥박점검 작전회의(pulse-check huddles)’를 빈번하게 함으로써 어린 직원들도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적극 개진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10대 직원들은 식료품 준비나 3차원(3D) 안경 배부 준비 방식 변경 같은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자신들의 행동이 고객 경험은 물론이고 디큐리언의 재무 건전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를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직원들로 하여금 자신도 회사의 근본적인 프로세스 설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인식과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다.

○ 가족 같은 공동체 구축 필요

직원들이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주길 원한다면 먼저 그들이 자신의 실수를 공개한다고 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평사원과 고위직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브리지워터나 디큐리언에선 임원들 역시 평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해야 한다. 특히 브리지워터는 임원들의 인사 고과도 공개한다. 공개된 인사 고과 정보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 즉 해당 임원의 취약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 브리지워터에선 모든 회의를 녹화한다. 고객 관련 비밀 정보를 논의하지 않는 한 모든 직원이 녹화된 회의를 볼 수 있다. 상사들이 회의에서 특정 직원의 실적을 논의했지만 그 직원이 회의 참석을 통보받지 못했을 때도 해당 직원이 언제든 녹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조직의 투명성이 보장돼 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도 가족에겐 터놓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들만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가족 같은 공동체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적 약점을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