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볼품없는 거리, 문 닫힌 전통시장, 지저분한 골목길, 무미건조한 상가 건물, 낙후된 주택가, 디자인 없는 공공시설물 등 우리 옛날 도심은 더 이상 구도심으로서의 역사, 경관, 문화를 지니지 않는다. 성장의 그늘에서 우리 고유의 옛 공간들은 차츰 사라지고 새로운 국적 불명의 도시 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이나 문화가 있는 외국 도시들을 가보면 도시의 주요 공간을 잘 창조했고, 그 공간들을 제대로 보존했던 정신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도시를 보며 감동을 받는 것은 그 도시에는 격이 있고 그 속에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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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없으면 도시민들이 숨이 막혀 못 산다. 자동차 중심대로가 도시 공간 대부분을 잠식한 지 오래되었고, 인도는 좁은 공간에다 걷기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마천루 도시 모습으로 변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까이 하는 도시 공원이나 수변공간만 해도 그렇다. 놀이기구, 스포츠시설, 주차장 등 너무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여백의 공간은 빈 공간으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도시도 여백의 미학에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 도시 공간에서도 채워진 공간과 채워지지 않은 공간의 관계 속에서 여백의 공간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용산의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기지 터 230여만 m²(약 70만 평)가 우리한테로 굴러 들어온다. 이 공간을 녹지와 공원으로 비워 놓게 되면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같은 커다란 도심공원이 서울에도 생겨나게 된다. 미군이 이 장소를 비우게 되면 이러한 비움의 철학을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는 도시민의 마음을 살리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도처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도시도 전통, 복원, 비움, 자연, 생태, 재생 속에서 도시적 삶의 깊은 의미를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