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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나무가 되어야지

입력 | 2014-04-03 03:00:00

[창조를 위한 詩的 상상력]
아무리 잘 이해한다 한들 당사자만 하랴
易地思之 관점의 경영도 늘 2%가 부족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눈을 감고/나무가 되어야지/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류시화 시인이 쓴 ‘나무의 시’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나와 대상을 하나로 일체화하는 시 작법의 핵심을 효과적으로 요약해 놓은 글귀라 할 수 있다.

많은 예술 장르가 마음 읽는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입장을 바꿔보기도 한다. 이름 하여 ‘역지사지(易地思之)’다. 하지만 역지사지에서 관점의 주체는 나다. 내가 그렇게 해보는 것이지 내가 그 사람이 돼보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아무리 잘 이해한다 한들 당사자만 하랴”는 말처럼 이해 부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 중심의 관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사물이나 자연을 바라볼 때도 아주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나 중심의 관점을 활용한다. 꽃을 그리는 화가가 꽃이 돼보지는 않는다.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책상이나 책꽂이가 돼보지도 않는다. 음악가가 나무를 표현할 때 나무가 돼 어떤 마음인지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사람 입장에서 살펴본다.

반면에 시는 그렇지 않다. 상당수 시인은 시를 쓸 때 쓰고자 하는 사물이나 자연이 먼저 돼본다. 이른바 자아의 세계화를 통한 ‘일체화’다. 예를 들어 담쟁이덩굴에 대한 시를 쓰고자 한다면 시인은 직접 담쟁이덩굴이 돼본다. 그리고 담쟁이덩굴이 원래 가진 성향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유발하는가를 찾으려 한다. 한마디로 담쟁이덩굴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알아내는 시인들의 일체화 방법을 회사 제품 개발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소화기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소화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무관심의 대상이다. 대부분 집에서는 신발장이나 베란다 구석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소화기를 처박아둔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여름에 바람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놓은 뒤 문 지지대로 사용하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에 놓아둔다. 막상 사용할 때가 되면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또 오래도록 방치해 분말이 다 새어나가 소화기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 크기를 바꾸거나 사용설명서를 더욱 자세히 써 놓는다고 소화기 판매량이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시장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 중심의 고정된 관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점으로 제품을 만들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고객들에게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 어렵다. 고객들도 볼 수 있는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회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소화기를 만들어냈다. 작은 거울처럼 얼굴을 비춰 볼 수 있는 액화 거울 소화기다. 거울 대신에 시계를 붙여 놓으면 액화 시계 소화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일단 소화기를 구석에 처박아 둘 이유가 없다. 책상 위나 거실 등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둘 수 있게 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소화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형태의 신제품을 통해 이 회사는 매출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거울 소화기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는 시인들이 사용하는 일체화 기법을 활용해 쉽게 얻을 수 있다. 즉, 내가 소화기가 돼서 소화기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보면 된다. 기존 소화기의 마음은 어떨까. 외롭다, 우울하다, 화난다, 사랑받고 싶다, 깨끗하고 싶다 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필요하다고 데려다 놓고는 구석에 처박아두고 먼지를 흠뻑 먹어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것이 소화기의 아픈 마음이다. 소화기의 아픔을 찾았으니 이제 그 아픔을 해결해주면 새로운 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 거울이나 시계처럼 사람들이 아끼는 제품과 같은 역할을 하면 소화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 시인처럼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의 관점으로 완전히 전환하면 거울 소화기처럼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쉽게 도출할 수 있다.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moonk0306@naver.com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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