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정치부 차장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자의 정의(定義)는 ‘남의 말을 들어서 내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쓰는 놈(쓸 記, 놈 者)이지만 그 전에 듣는 사람이다. 들어야 쓸 게 생긴다. 반면 정치인은 말하는 사람이다. 정치는 말로 빚는 종합예술이다. 정치의 꽃인 선거(6·4 지방선거)가 다가오니 말의 향연이 더 화려하다. 내가 들은 정치인의 수많은 말 중 가슴에 남은 말의 현재 순위를 소개한다. 당선을 꿈꾸는 후보들, 국정을 이끄는 정치인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면 좋겠다.
3위, “자신에 대한 칭찬뿐만 아니라 비판에도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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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장관님 비판기사 꽤 썼습니다. 속상하셨죠.”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배 아파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의 비판이 그 쓰린 마음을 달래주는 기능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에게서 ‘내공’을 느꼈다. 그 후 비판을 대하는 태도는 그 그릇 크기를 가늠하는 주요 잣대가 됐다.
최근 동아일보와 채널A가 전문가들과 함께 청와대 수석들 평가를 했다. 평가 설문에 답하면서 1등은 몰라도, 꼴등은 짐작됐다. 예상대로 박준우 정무수석. 어찌 보면 당연했다. 원래 욕먹는 자리고, 실제로도 줄기차게 비판받아 오지 않았는가. 궁금한 건 박 수석의 반응이다. 기자나 여야 의원들에게 “‘꼴찌 수석’입니다. 다음엔 1등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내공을 발휘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왜 꼴찌냐’며 투덜대고만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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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이 열린 2002년 내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너무도 많은 말을 취재했다. 그중 이 말은 가슴에 남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DJ)은 측근과 아들 비리로 인기가 없었다. 민주당의 다른 주자들은 그런 DJ와의 차별화에 애썼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자산 부채 동시 승계론’을 폈다. 부채 때문에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후보 자리까지 흔들렸지만 그 덕분에 호남과 민주당 지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산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 작성 과정에서 ‘민주당의 뭘 빼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을 겪은 안철수 의원이 새겨볼 만한 계명(誡命)이다.
대망의 1위, “사랑과 정치는 계산하지 마라.”
‘한국 정치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8선)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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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