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사회부 기자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날이 바로 2012년 만우절이었다. 평범한 20대 여성 A 씨(당시 28세)도 어쩌면 직장 동료와 유쾌한 농담을 나눈 뒤 퇴근길에 나섰을지 모른다. 그러나 집을 코앞에 두고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남은 가족들의 악몽은 더욱 끔찍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딸 동생 누나를 잃은 가족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정에 선 오원춘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악몽이 현실임을 깨닫고 울부짖었다. 오원춘에게 무기징역형이 확정됐을 때 어쩌면 가족들은 끔찍한 악몽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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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A 씨 가족뿐만이 아니다. 2011년 6월 발생한 ‘구의동 묻지 마 살인사건’, 1999년 5월 대구에서 일어난 ‘황산 테러 사건’ 등 주위를 둘러보면 흉악범에 의해 가족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가족들이 많다.
다른 강력사건의 경우 피해 당사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 지원이 이뤄진다. 그러나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최근 들어 이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고립된 채 꼭꼭 숨어 사는 가족들이 많다.
이달 15일 출범한 ‘한국살인피해추모위원회’는 이런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위원회 설립과 함께 한국에서 처음 인터넷에 개설된 살인피해자추모관(kmvm.org)에는 현재 20여 명의 살인, 의문사, 실종사건 피해자가 등록돼 있다. 추모관에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가족들의 애절한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위원회는 4월 26일 처음으로 자조회복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피해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다. 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이들의 치유를 도울 예정이다. 위원회 출범 및 활동 계획이 알려지면서 조심스럽게 참여 방법을 묻는 가족들이 늘고 있다. 공 센터장은 “고통을 숨길수록 병은 심해지고 분노는 커진다”며 “어떻게든 세상에 나와서 아픔을 노출해야 나아진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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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