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왜 조선시대 사람들은 번듯한 대로를 버리고 좁은 골목길로 다녔을까. 백성들이 고관대작의 행차와 마주치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쉬∼, 물렀거라. ○○○ 대감 행차시다.” 백성들은 행차가 끝날 때까지 맨땅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그러니 높은 사람들의 행차가 달가울 리 없다. 이때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며 거들먹거리던 하인을 ‘거덜’이라 하고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권마성(勸馬聲)’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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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그놈을 당장 잡아오렸다’ 등에 쓰는 ‘렸’은 어떤가. 잘못된 표기다. 이때의 ‘렸’은 ‘렷’으로 써야 한다. 경험이나 이치로 추측하거나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가 ‘-렷다’이기 때문이다.
피맛골의 단골은 서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선술집 국밥집 생선구이집 등 값싸고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했다. 사석원 씨는 ‘사석원의 서울연가’에서 찌그러진 황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굵은 꽃소금에 찍어 먹던 임연수어를 떠올리며 피맛골을 예찬한다. 아, 그러고 보니 ‘임연수어’를 ‘이면수’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생선의 양면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초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따르면 이 생선은 함경도 지방의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임 씨가 이 생선을 잡는 데 달인이어서다.
예전 피맛골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지금은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아쉬운가. 허나 누구를 탓하랴. 피맛골이 사라지기 전에, 피맛골의 정취를 사랑하는 인간들이 먼저 사라져버린 것을….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