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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꿈을 향해, 직구!

입력 | 2014-03-15 03:00:00

돌아온 프로야구 시즌, 어느 ‘마이너’ 선수의 희망가




프로야구 삼성 신인 투수 홍유상이 경북 경산시에 있는 퓨처스리그(2군) 연습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공을 던지고 있다. 홍유상은 올해 신인 드래프트 때 뒤에서 열두 번째로 선택받은 선수다. 경산=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2014 프로야구가 힘찬 시동을 걸었다. 8일부터 23일까지 일제히 시범경기를 치른 뒤 29일부터 정규시즌을 시작한다. 시범경기는 B급 선수들도 팬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신고선수(연습생)까지 포함하면 한 팀은 보통 90명 안팎으로 선수단을 꾸린다. 이들 중 정규시즌 1군 무대에서 뛸 수 있는 선수는 외국인 선수 3명을 포함해 26명이 전부다. 나머지 선수들은 2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마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해마다 시즌이 끝나면 구단은 방출자 명단을 발표하고 야구밖에 모른 채 살아온 젊은이들이 유니폼을 벗는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음지(陰地)에서 양지(陽地)를 꿈꾸는 어느 ‘마이너 선수’의 희망가다. 이야기는 삼성의 무명 신인 투수 홍유상(24)에서 시작해 ‘따뜻한 박수’로 끝난다. 》  

▼ 신인지명 117명중 뒤에서 12번째, 내 이름은 홍유상 ▼
‘고교 大魚’ 시절 찾아온 부상… 학교 1년 더 다니며 재활 노력
잘해야 한다는 ‘마음의 병’… 마운드 오르면 컨트롤 안돼
“곧바로 1군 갈수는 없겠지만… 5년뒤엔 꿈의 무대 서 있을것”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홍유상은 사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더 이상한 선수다. 2차 신인지명회의(드래프트) 9라운드로 입단한 선수까지 기억하는 건 열혈 야구팬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에서도 그의 존재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홍유상을 검색하면 ‘야구선수 홍유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글이 제일 위에 뜬다. 그의 고종사촌 형이 블로그에 쓴 글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32)를 검색하면 네이버에서 직접 작성한 프로필이 제일 위에 뜨고, LA 다저스의 류현진(27)을 검색할 때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 선수가 직업인 많은 이가 그렇다. 홍유상과 같은 팀에, 역시 신인에, 마찬가지로 투수인 이수민(19)조차 그렇다. 그런데 홍유상은 번듯한 프로필이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등록 선수 597명은 평균 연봉 1억638만 원을 받고, 키도 183cm나 된다. “프로야구 선수는 1등 신랑감”이라는 한 매체의 표현은 절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홍유상과 이수민의 차이는 분명하다. 대구 상원고 출신인 이수민은 1차 지명을 받고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홍유상은 2차 드래프트에서도 93명이 뽑히고 나서야 프로행을 통보받았다.

프로야구는 고졸이 대졸보다 인정받는 보기 드문 직업이다. 올해 억대 연봉자 중 57.4%(78명)가 고졸이다. 홍유상과 이수민이 올해 받는 연봉은 2400만 원으로 같다. 그 대신 이수민은 계약금으로 2억 원을 받았다. 홍유상의 계약금은 3000만 원이 전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받는 천문학적인 연봉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홍유상은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다.

신생팀 KT 우선 지명과 각 팀 1차 지명자까지 모두 합치면 홍유상은 전체 106번으로 프로야구 신인 선수가 됐다. 뒤에서 12번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선수 대부분은 1군 구장 전광판에 자기 이름도 새겨보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다.

홍유상보다 5년 앞서 프로야구 선수가 됐던 2009년 드래프트 지명자 73명 중 25명(34.2%)은 현재 ‘은퇴’ 상태다. 사실 프로 팀에서 지명을 받는 건 그해 고졸과 대졸 선수를 합쳐 상위 10% 안에 드는 엘리트 선수라고 확인받는 것이다. 이 안에 들면 누구나 프로야구 스타로 우뚝 서 돈과 명예를 거머쥐는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3명 중 1명이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희망을 포기하는 데는 5년이면 충분하다.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문우람 ‘레이저 눈빛’ 눈은 마음의 창이다. 야구 팬들은 “문우람의 눈에서는 레이저 광선이 나온다”고들 한다. 문우람은 “어릴 때부터 야구장은 전쟁터고, 상대와 대결할 때는 절대 웃지 말라고 배웠다”며 “상대 투수를 제압하겠다는 각오로 임하다 보니 매섭게 투수를 노려보게 됐다”고 말했다. MBC스포츠플러스 화면 캡처

연습생 출신 문우람(22)은 지난해 프로야구 넥센에서 69경기에 나와 타율 0.305, 4홈런, 28타점, 41득점을 기록하며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다. 출장 경기는 한 시즌 프로야구 전체 경기(128경기)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6월 22일 1군 엔트리에 처음 이름을 올린 뒤로는 사실상 붙박이였다. 문우람은 톱타자가 부상으로 빠진 넥센의 희망이 됐다. 문우람이 없었다면 넥센은 지난해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 1군 잔류 소리없는 전쟁… “야구 잘하려” 이름 바꾸기도 ▼
“죽어도 2군엔 내려가지 않겠다”… 이 악물고 타석 들어선 문우람
작년 시즌 ‘연습생 신데렐라’로… 실력에 때론 운도 따라야 하지만
“내일은 1군” 믿음으로… 직구!
  

문우람은 광주 동성고 재학 시절 투수와 타자를 겸하면서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했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던 ‘메이저’였다. 문제는 투수로서는 키(177cm)가 작고 타자로서는 발이 느리다는 점이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 때 그를 원하는 구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학에 간다고 4년 뒤 기회가 생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문우람은 넥센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프로 첫해 퓨처스리그(2군)에서 타율 0.283을 기록하며 연습생 딱지를 떼는 데 성공한 문우람은 이듬해 0.330으로 타율을 끌어올렸고, 9월에는 1군 무대에도 데뷔했다.

하지만 1군 무대는 달랐다. 수비에서는 강한 어깨를 자랑하며 넥센 팬들을 설레게 했지만 방망이는 71타석에서 타율 0.231에 그쳤다. 지난해 시작은 또다시 2군이었다. 2군에서 거의 석 달을 보내고 다시 1군의 부름을 받았을 때 문우람은 “절대로 여기로 돌아오지 않겠다. 죽기 살기로 뛰겠다”며 전남 강진군의 넥센 2군 숙소에서 짐을 꾸려 나왔다. 야구 팬들은 타석에 들어선 그를 보며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독기가 서린 눈빛이었다. 독기가 문우람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롯데 황동채(개명 전 황성용·31)도 2007년 7월 1군 경기장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다시는 2군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황동채는 1군에 올라온 첫 달 타율 0.386을 기록하며 롯데 팬들에게 ‘근성의 후계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 뒤 거의 7년이 지나도록 사직구장(롯데 1군 경기장)보다 상동(2군 숙소)이 더 익숙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 황동채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이름을 바꾼)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야구를 좀 더 잘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1군은 근성이나 깡, 의지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실력은 기본이고 가끔씩 운도 따라줘야 한다. 미국 마이너리거들 삶을 다룬 영화 ‘19번째 남자’(원제 ‘Bull Durham’) 대사처럼 말이다. “누군가가 평생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낼 때 다른 누군가는 일주일에 하나씩 터진 ‘바가지 안타’ 덕에 (최고 명문팀)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다.”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프로야구 열기가 뜨겁다. 경기마다 관중이 들어차고, 선수들의 몸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는 1군들의 세상이다. 그들 뒤에는 2군이 있다. 1군 경기에 서는 것이 꿈인 많은 마이너 선수. 그들의 경기장엔 관중의 열기가 없다. 텅 빈 경기장. 그곳에서 뜨거운 것은 그들이 흘리는 땀뿐이다. 동아일보DB

홍유상 역시 고교 2학년 때까지는 광주 진흥고 김정훈(23·현 넥센)과 함께 동년배 최고 투수로 손꼽히던 ‘메이저’였다. 각종 전국대회 투수 기록 상위권은 늘 이 두 선수가 양분했다. 그때 허리디스크가 찾아왔다. “수술을 하기도 애매하고, 안 하기도 애매하다”는 진단에 홍유상은 재활을 결심하고 2학년을 두 번 다녔다.

‘고교 4학년’이었던 2009년 봄 홍유상의 기다림은 부푼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해 6월 한 스포츠 매체는 “홍유상 같은 선수는 검증이 끝났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에서 몇 순위 지명을 받느냐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며 구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홍유상은 그때를 떠올리며 “옛날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아 참 답답했다. 특히 부모님께 죄송했다”고 털어놓았다.

경산볼파크(삼성 2군 숙소)에서 만난 홍유상은 인터뷰 내내 ‘부모님’이라는 표현을 22번 썼지만 사실 그에게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어머니는 강원 강릉에서 치킨 집을 하며 홍유상과 누나를 키웠다. 홍유상은 중학교 때 가내영 당시 인천 제물포고 감독(43)의 눈에 띄어 인천으로 스카우트됐다. 홍유상은 휴대전화에 가 전 감독을 ‘아빠’로 저장해두고 있다.

부상 전력이 있는 그를 프로팀에서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홍유상은 성균관대에 진학했지만 3학년 때까지는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됐을 때는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없는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이 발목을 잡았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커 ‘마음의 병’에 걸린 것이다. 홍유상은 “마운드에 올랐는데 갑자기 공을 못 던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밸런스도 없어지고 정신력도 약해졌다. (화가 나서) 공보다 글러브를 더 많이 던졌다”고 회상했다.

프로구단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균관대 4학년 때 그를 지켜본 삼성 스카우트는 이렇게 썼다. “다소 작은 신체조건에 반하는 속구 구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너무 힘에 의존하는 투구 형태를 가지고 있어 제구력이 불안정하고 변화구 구사 능력이 떨어져 보임.” 냉정하게 말해 삼성이 그를 지명한 건 현재가 아니라 고교 2학년 때 과거 모습 덕이었고, ‘로또’를 노린 선택이었다.

홍유상도 자신이 당장 1군 무대에 서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그는 “길게 보고 있다. 29세쯤 1군에 자리 잡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며 “2군에서 에이스가 되는 것보다 1군 26번째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밝히자면 1군 엔트리가 26명이다.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NC 손시헌(34)은 선린정보고와 동의대 졸업반 때 두 번 모두 프로팀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갈 때도 원하는 학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러나 2003년 연습생으로 두산에 입단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손시헌은 데뷔 3년 만에 해당 포지션 최고 선수에게 주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NC와 4년간 30억 원에 계약하면서 몸값 대박을 터뜨렸다.

반면 계약금을 6억 원(역대 5위)이나 받고 2005년 1차 지명자로 두산에 입단했던 김명제(27)는 프로 1군 무대에서 5시즌을 뛰는 동안 22승(29패)밖에 거두지 못한 데다 음주운전 사고까지 겹쳐 이제 프로야구에서 보기 힘들어진 선수가 됐다. 드래프트 지명 순번이 그 선수의 앞날까지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야구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누군가가 ‘한 방’을 날리고는 한다. 넥센 김지수(28)는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염경엽 감독은 김지수의 활약을 두고 “연봉(2400만 원) 값 이상을 해냈다”고 말했다. 올해 김지수는 3500만 원으로 연봉이 올랐다.

이런 기회와 가능성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기에 프로야구 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은퇴를 했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도 포기할 줄 모르고 다시 도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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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돌아가는 모양새는 홍유상에게 불리한 게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어려움에 힘들었던 건 지금은 대박을 터뜨린 손시헌도 마찬가지였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수로 꼽히는 이종욱(34·NC)도 마찬가지였다. 이종욱 역시 옛 현대에서 방출당한 아픔을 딛고 스타로 거듭났다.

그러니 우리 모두 누군가의 꿈을 함부로 비웃지 말기로 하자. 그리고 지금은 무명인 홍유상이 앞으로 프로야구에 길이 남을 역사를 쓴다고 하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말자. 홈런왕 이승엽(38·삼성)조차 시작은 실패한 투수였다. 희망은 늘 실패에서 싹이 튼다.

경산=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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