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 찾아온 환자에 10km 마라톤 처방… ‘수상한 金원장’
김석 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나라한의원 직원들이 서울 양재천변에서 2014 서울국제마라톤에서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김 원장은 “우리 한의원을 통해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이가 25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석 나라한의원 대표 원장(56)이 마스터스 마라톤(일반인 마라톤) 전도사로 거듭나게 된 배경이다. 김 원장은 가족, 환자, 직원과 함께 달리며 나라한의원을 마스터스 마라톤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건국대가 엘리트 선수를 키워내는 ‘마라톤 사관학교’로 불리듯 나라한의원은 ‘마스터스의 사관학교’로 통한다. 16일 열리는 2014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5회 동아마라톤대회 마스터스 부문에서 나라한의원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직원 모두가 풀코스 완주라는 도전장을 냈다. 김 원장을 포함해 13명. 특히 차지혜 원장(32) 등 8명은 풀코스에 처음 출전한다.
김 원장은 1995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한의학과 스포츠를 접목한 다이어트 전문 스포츠클리닉을 열었다. 국내 최초였다. 한의학과 운동을 결합한 프로그램의 효과가 좋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1999년 중국 진출을 시도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외환위기 여파로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았던 때였다. 또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예정이었던 중국이 2년 늦게 가입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이 꼬여 인허가 등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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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김 원장은 2001년부터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한 아내 황성희 씨(50)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한의원을 개업하면서부터 유산소 운동의 ‘에어로빅스’를 빗대어 기(氣)를 마신다는 뜻의 ‘기로빅스’ 동호회를 만들어 나름대로 건강엔 자신이 있었다. ‘기로빅스’는 전통 무술을 활용한 기체조다.
처음엔 마라톤보다 산행을 많이 했다. ‘기로빅스’ 회원들과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 산에서 걷고 달리면서 숨이 넘어갈 듯한 극한 경험을 한 뒤 이상하게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느꼈다. 그 뒤 주말엔 산행, 주중엔 달리기를 시작했고 이를 반복하다 2003년 11월 처음 풀코스를 완주했다. 83kg이었던 체중도 62kg으로 줄었다. 마라톤 완주는 그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다이어트 효과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해냈다’는 자신감을 줬다. 그때부터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마라톤 완주의 기쁨을 혼자서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환자들에게도 풀코스 완주가 주는 혜택과 기쁨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환자들을 차근차근 마라톤에 입문시켰다. 처음엔 10km를 완주하게 했고 결국 풀코스까지 달리게 했다. 환자들은 처음엔 꺼렸지만 10km만 완주해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좋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마라톤의 기쁨을 함께 했다. 지금까지 나라한의원이 배출한 풀코스 완주자는 250여 명이다.
“우리 한의원에는 잘나가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들이 우리 한의원을 통해 마라톤의 매력에 빠진 뒤 회사에 돌아가 동호회를 만들었고 각종 지원을 해줬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국 ‘마라톤 바이러스’를 옮긴 셈이 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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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양도 전 LG투자증권 씨름단 단장은 체중이 129kg에 이를 때 김 원장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고 93kg 때 풀코스를 완주했다. 김 원장은 “허 단장으로부터 건강하게 마라톤과 산행을 잘하고 있다는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이럴 때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빚보증을 잘못 서서 고통받고 있는 한 연예인이 그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고 있다. 그 연예인은 5월에 풀코스에 도전할 예정이다.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결혼식 복장 차림으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던 김준호 씨(오른쪽)와 남편 박성호 씨(왼쪽). 동아일보DB
김 원장과 그의 아내가 달리자 가족 전체가 달리게 됐다. 아내 황 씨는 분당검푸마라톤동호회 부회장을 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20회 넘게 달렸다. 김 원장은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에서 67회째 풀코스 완주에 도전한다. 첫째 딸 주희 씨(27), 둘째 딸 민수 씨(25), 막내아들 태헌 씨(23)가 모두 풀코스를 완주했다.
주희 씨는 대학 1학년 때인 2008년 10월 아빠와 함께 풀코스를 완주했다. 민수 씨는 언니의 완주 모습을 보고 욕심을 냈다. 역시 대학 1학년 때인 2011년 풀코스를 완주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5km 코스를 뛰었고 중고교 시절엔 하프코스를 달려 달리기와는 친해져 있었다. 민수 씨는 “솔직히 언니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하겠냐는 일종의 경쟁심 때문에 달렸다”며 “그런데 완주하고 나니까 너무 좋아 그때부터 계속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첫 완주는 힘들었다. 비가 와서 27km부터는 너무 힘들어 울면서 달린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더 뿌듯함이 샘솟았다. 지난해 가을엔 1주 사이로 풀코스를 2회 연속 완주했다. 김 원장은 두 딸의 남자친구, 아들과 함께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자신의 건강한 두 딸과 사귀는 남자라면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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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솔직히 내가 직원들에게 달리라고 할 순 없었다. 그런데 민수가 그 역할을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우리 한의원이 운동을 전파시키는 곳 아니냐. 민수가 좋은 바이러스를 직원들에게 옮겼다”며 활짝 웃었다.
1997년 입사해 운동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김준호 씨(39·여)는 다이어트를 하러 찾아온 박성호 씨(41)를 만나 마라톤대회에 함께 출전하다가 결혼에 성공했다. 박 씨는 체중이 98kg이던 2007년 3월 병원을 찾아 2개월여 만에 62kg까지 뺐고 그해 8월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김 씨는 이런 박 씨의 의지에 반했다고 한다. 김 씨는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박 씨와 함께 풀코스를 완주한 뒤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김 씨는 “마라톤은 체력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사람의 인생관도 바꾸는 것 같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출발부터 골인할 때까지 완주만 생각해야 한다. 지구력을 키워준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 인생도 마라톤하듯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1년에 한 번은 남편과 함께 풀코스를 완주하고 있다.
홍나운 간호사(42)는 나라한의원에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마라톤에 입문했다. 입사 전엔 등산을 좋아했는데 김 원장과 김준호 씨 등이 마라톤에 빠지는 것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2012년 풀코스를 4시간30분38초로 처음 완주했고 요즘은 하프마라톤을 뛴다. 이번이 풀코스 두 번째 도전이다.
김 원장은 주로 여성들에게 마라톤을 권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이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며 몸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또 운동을 병행하지 않는 다이어트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여성들은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에 겁부터 먹는데 막상 시작하면 아주 쉽다. 우리 한의원의 모든 여자들도 이번에 풀코스를 달리지 않나. 달리자. 달리면 세상이 달라진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