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든 사람이든 이름을 안다는 것은 상대를 알아가는 첫 단계다. 그런데 나는 영 사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서너 번은 만난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는 참 난감하다. 그럴 때 ‘누구입니다’ 이름을 밝히며 인사하면 좋으련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뵌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아마 앞으로도 세 번은 더 가르쳐주셔야 할지 몰라요.”
이렇게 궁색한 말을 늘어놓는 게 싫어서 나는 모처럼만에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말을 하지 말 것, 특히 어른들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고 뵐 때마다 “누구입니다”라고 정중히 이름을 말하라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대부분 우울한 미래를 예측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고유한 이름 대신 숫자나 기호 같은 걸 부여하는데, 그것이 인간에게서 개성을 빼앗고 집단화, 기계화시키는 수단이다. 사람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일련번호 따위로 불릴 때 얼마나 삭막하고 암울한지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말 그대로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을 살고 있고 그 이름을 명예롭게 지키고자 때로는 목숨까지 던지지 않는가.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은 곧 그분들이 평생을 헌신한 결과다.
사람 이름도 외우지 못하는 주제에 요즈음 나는 ‘이름 모를 꽃’의 이름을 알려고 마음먹었다. 학창시절에 영어단어 외우듯이 야생화 사진첩을 자주 들여다본 덕분에 바람꽃, 앵초, 물봉선화같이 어여쁜 꽃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이 꽃들을 만나면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어서 빨리 이 꽃들이 피어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