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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느라… 돈 때문에… 직장맘은 오늘도 죄인이 된다

입력 | 2014-03-11 03:00:00

[육아고민 없는 사회로]<上>육아휴직 왜 못쓰나
엄마




“정부가 육아휴직을 권장만 하지 말고 강제로 쓰게 했으면 좋겠어요. 안 쓰면 벌금을 물리거나 구속이라도 시켜야 마음 편히 둘째를 낳을 것 같아요.”

2세 딸을 둔 직장인 최모 씨(31)는 “회사 동료들 중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을 못 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2012년 아이를 낳고 90일 출산휴가만 쓴 뒤 일을 하고 있다.

○ 육아휴직, 아직도 그림의 떡

그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 2011년 초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행정직은 계약직으로 입사해 2년간 일해야 평가를 거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딸을 낳았던 2012년 6월,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말도 꺼내지 못했다. 휴직하면 복귀 시점이 재계약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부서는 업무량에 비해 인력이 부족했고, 휴직을 하면 대체인력이 꼭 필요했다. 아직 업무숙련도도 낮은데 휴직을 하면 돌아왔을 때 자리가 남아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신생아를 어린이집에 보내 단체생활을 시킬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친정어머니(58)가 애를 봐주겠다고 나섰지만 이때부터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평소 활동력이 넘쳤던 친정어머니는 육아 때문에 산악회 계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됐고 그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했다.

육아로 지칠 때마다 친정어머니는 아기에게 TV를 보여줬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 어머니는 “그러면 나는 어떡하냐”고 말했다. 최 씨는 “아이를 맡겨서 죄송스러우니 간섭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내 방식대로 못 키운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못 쓰게 하는 또 다른 걸림돌은 낮은 급여 수준이다. 현행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40%를 최대 100만 원 지급하되 15%는 직장 복귀 6개월 뒤 지급한다. 2세 외아들을 둔 이모 씨(32)는 “육아휴직을 너무 쓰고 싶지만 급여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임금으로 월 270만 원을 받지만 육아휴직을 쓰면 급여는 월 100만 원으로 뚝 떨어진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최저생계비는 월 132만9118원(3인 가구 기준). 육아휴직을 쓰면 이 씨 가족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 “육아휴직 1년, 너무 짧아”

육아휴직을 쓴 사람들도 가슴이 답답하긴 마찬가지. 지난해 3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 장모 씨(37)는 다음 달 회사에 복귀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12개월 된 아기는 아직도 괄약근에 힘이 없어서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도 침대에 똥을 싼다. 하루 종일 붙어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주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상황. 서울 성북구 장 씨의 집에서 강남구에 있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려면 오전 7시에 집을 나서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야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아이를 떼놓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아이는 요즘 밥은 잘 안 먹고 모유만 찾는다. 장 씨는 인터넷에서 ‘아이 밥 잘 먹이는 법’을 검색해 방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제3자에게 아기를 맡기면 제대로 먹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는 “직접 1년 정도는 더 키워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했다.

육아휴직을 1년 보장해주니, 정작 현장에서는 몇 개월밖에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쌍둥이(4)를 둔 정모 씨(36)는 육아휴직을 3개월밖에 쓰지 못했다. 상사가 “옆 부서 OO는 육아휴직 1년을 꼬박 다 채워서 썼더라”며 눈치를 줬기 때문이다.

김모 씨(32)도 회사 분위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첫아이(6)를 낳았을 때는 9개월, 둘째(3)를 낳았을 땐 5개월밖에 쓰지 못했다. 육아휴직 직후 회사에 복귀할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저귀를 안 벗겠다며 울음을 터뜨리고 불안해하는 증세를 보였다. 김 씨는 “엄마가 필요할 때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그런 것 같다”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털어놨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손현열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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