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쉬산빈 지음·이영수 옮김/376쪽·2만3000원·정은문고
중국 대륙에 문화대혁명의 바람이 거셌던 1969년의 결혼식 청첩장(왼쪽). 청첩장 지면 대부분을 마오쩌둥의 초상과 어록이 차지해 당시 이념 과잉의 시대를 풍자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자전거 소유주의 얼굴 사진을 붙여야 했던 1920년대 자가용 자전거 운전면허증(가운데)과 공창(公娼)제도가 남아있던 1940년대 기녀(妓女)들이 정부에 제출했던 영업허가 신청서(오른쪽). 정은문고 제공
중국에서도 유명한 문서 수집가였다는 저자는 일평생 수집한 각종 문서와 증서 3000여 점 가운데 100년(1880년∼1980년)에 걸친 중국인의 희로애락 인간사를 보여주는 생활문서 300점을 엄선해 이 책에 담았다. 각종 학교 졸업장과 신분증, 차표부터 복권과 전보·전신문, 결혼 청첩장, 심지어 인신매매 문서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를 지나온 중국인이라면 접했을 법한 다채로운 문서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가히 생활문서로 쓴 중국 현대 100년사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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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책이 한가한 옛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뒤 아편이 합법화되면서 청나라 정부가 발급한 아편판매소 영업허가증이나 중일전쟁 당시 일본이 전시인력 충원 목적으로 중국에 세운 학교에서 발급한 일장기가 박힌 졸업증에는 서구 열강과 제국주의 일본의 반식민지였던 중국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옛 문서를 뒤적이며 무심히 들려주는 이야기 같지만 실은 오늘날 중국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목도 놓칠 수 없다. 문화대혁명기 혁명학습장으로 이름 높았던 농촌 마을을 답사한다는 명분으로 공짜 관광을 떠났던 공직사회의 현실을 꼬집는가 하면 ‘한 푼도 안 받는다’는 인장이 선명한 취재알선장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악명 높은 중국 언론의 부패상을 야유한다.
초보적 중국어 독해가 가능하면 책에 실린 문서를 직접 해석할 수 있어 책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1, 2부 서두에 깔끔하게 정리된 중국사 요약과 주요사건 연표 덕분에 근현대 중국사에 밝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원제는 ‘k照百年’(2006년).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