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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아” 6년을 술로 지새우던 아빠, 딸 곁으로

입력 | 2014-03-05 03:00:00

2007년말 막내 잃고 직장 그만둬
“널 안고 잘때가 제일 행복했는데” 괴로움에 술로 하루하루 버텨
안양도 못떠나… 끝내 심장마비 사망




이혜진 양의 아버지 이창근 씨는 2008년 3월 13일 납치된 딸이 경기 수원시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고통스러워했다. 동아일보DB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혜진·예슬이 사건’. 그해 12월 25일 이혜진 양(당시 11세)과 우예슬 양(당시 9세)이 범인 정성현(45)에게 유괴된 뒤 무참히 살해당했다.

막내딸 혜진 양을 살인마에게 잃은 뒤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온 아버지 이창근 씨(53)가 3일 오후 5시 45분경 경기 안양시 만안구의 자택에서 숨졌다. 경찰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나 특별한 외상이 없고 “평소 알코올의존증으로 간경화 등을 앓아왔다”는 유족의 진술에 미뤄 이 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들(24), 딸(22) 등 삼남매 가운데 막내딸을 유난히 아끼던 이 씨는 혜진 양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10년간 일했던 직장을 그만둔 채 술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이 씨가 실직한 뒤 부인이 온갖 잡일을 하며 어렵게 살림을 꾸려 왔다.

이 씨는 범인 정성현이 2009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도 “이미 하늘나라로 간 딸이 돌아오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곤 2012년 12월 5주기 추모식에서도 “널 안고 잘 때가 제일 행복했었는데…이렇게 추운 날 널 먼저 보낸 애비를 용서해라”며 오열했다. 딸이 숨진 뒤 인근의 다른 동네로 이사했지만 “딸이 그립다”며 끝내 안양을 떠나지는 못했다. 이 씨는 주변의 권유로 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사건 발생 6년여 만에 딸 곁으로 떠났다.

이날 이 씨의 빈소가 마련된 안양 A병원에는 이 씨의 부인 등 친인척 10여 명만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고 있었다. 장례식장은 6년여 전 혜진 양을 떠나보낸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유족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이날 빈소에는 범죄피해자대책지원본부 등에서 보내온 조화 5개가 전부였다. 이 씨의 시신은 화장돼 혜진 양이 묻힌 안양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발인은 5일 오전 10시.

당시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에도 행방을 찾지 못했던 혜진 양은 77일 만인 이듬해 3월 11일 훈련 중이던 예비군에 의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 발견 닷새 만인 2008년 3월 16일 오후 충남 보령에서 범인 정성현이 검거됐다.

안양=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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