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송하엽 지음/336쪽·2만 원·효형출판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41층(180m) 높이의 ‘거킨 빌딩’. 오이(gherkin)를 닮았다고 거킨 빌딩이라 불리는데 처음에는 ‘거시기’한 외양으로 논란이 많았지만 친환경적인 성능이 알려지면서 마천루 빌딩의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됐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설계로 2003년 완공됐으며, 영화 ‘원초적 본능 2’(2006년)의 주요 배경으로 나와 유명해졌다. 효형출판 제공
랜드마크가 되려면 우선 커야 한다.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로 준 자유의 여신상이 특별한 이유도 거대함 때문이다. 조각상 높이만 94m, 무게가 225t이다. 집게손가락 하나가 2.44m다. 나라를 구한 영웅의 동상도 이렇게 크게 만들어진 적이 없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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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벤의 높이를 능가하는 랜드마크가 불가능해 보이던 런던에도 2012년 유럽연합에서 가장 높은 72층(309.7m)짜리 더 샤드가 완공됐다. 사람들은 “런던의 상징인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며 비난했고, 건축가인 렌초 피아노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건물을 만들었다면 그건 실패다”라고 맞섰다.
껌을 뱉으면 벌금을 내고, 태형도 존재하는 나라 싱가포르는 건물 디자인도 범생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경제 위기가 닥치자 대극장 에스플러네이드를 짓고, 카지노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리조트 마리나 베이 샌즈를 건설했다. 열대과일 두리안을 닮은 에스플러네이드와 세 빌딩 위에 바게트 빵을 얹어놓은 듯한 마리나 베이 샌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랜드마크로 대접받고 있다.
랜드마크 얘기하면서 두바이를 건너뛸 수 없다. “무엇이든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로 커야 하고 스테로이드를 맞은 건축물처럼 우뚝 솟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칼리파(828m)를 지어 올렸다.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높이 경쟁을 하다 경제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고층 빌딩의 저주’다.
이제 웬만큼 높아서는 랜드마크가 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남보다 높아지려는 욕망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꼭 높아야만 랜드마크일까. 그리고 서 있던 랜드마크를 눕히기 시작했다. 수평적 랜드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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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신형 랜드마크는 일시적인 랜드마크다. 섬이나 건물을 대형 천으로 뒤덮는 식의 랜드아트마크와 200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던 스노보드대와 같은 이벤트성 랜드마크가 이에 속한다.
저자는 랜드마크를 “고정된 건축물이라기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건축물”이라고 재정의한다. 21세기형 랜드마크는 높아지기보다 낮고 길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유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성장 저개발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제안한다. “21세기형 지속가능한 도시는 투자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살고 일하며 쉬는 곳이다. 도시는 테마주가 되길 포기해야 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