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마흔 번째 생일을 알리기 위해 작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마흔을 앞둔 두려움과 서글픔에 우울했던 아내는 이번 선물만은 제대로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은 ‘스무고개 게임’으로 진이 빠진 끝에 아내가 원하는 선물의 이해할 수 없는 용도와 터무니없는 가격을 만났다.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아내의 표정에 무서리가 내리고 남편에겐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며칠 후 아내는 선물 자랑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그녀는 친구들의 “안 어울린다” 공세에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신경질이 아내의 십팔번 ‘전부 당신 때문’을 불러냈다. 레퍼토리는 ‘당신만 만나지 않았더라면’으로 이어졌다. 몸매가 망가진 것도, 살이 빠지지 않는 것도 남편 때문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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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성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모든 억울함을 대신 걸머져야 하는 ‘능력 원죄’가 남편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신에게 능력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이란 주장이다.
남편의 능력이 충분했더라면 더 좋은 선물을 골랐을 테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을 거란 얘기다. 몸매도 그렇다. 여유가 없기에 효과적인 다이어트를 못 한 것은 물론이고 스트레스를 받아 더 먹고 살이 쪘다는 논리를 편다. 심지어 아내의 팔뚝 살이 남편의 경제력과 반비례한다는 주장을 마치 공인받은 양 펼친다.
아내가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로 보일 수도 있다. 남자들이 능력자란 이미지를 방어하려고 남의 잘못을 핑계 삼는 양상과 비슷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감을 다치지 않으려고 불만족과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속성을 갖고 있다.
여성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거울 앞에서 자신이 괜찮은지를 수시로 확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남편의 탄탄한 등 뒤로 숨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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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바라는 것은 ‘괜찮다’는 확신이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부족함을 느끼는 아내의 마음은 남편의 이런 말에서 힘을 얻는다. “잘 어울려. 지금도 충분한데 뭘.”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