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대구서 107주년 기념식-전시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있는 서상돈 독립지사 동상.
홍승활 대구시 안전행정국장은 20일 “국채보상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됐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구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21일 오전 11시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채보상운동 107주년 기념식과 전시회를 연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3900여 m²에 3층 규모로 2011년 개관한 기념관에는 1907년 당시 전국으로 번진 국채(일본에 빌린 1300만 원)를 갚기 위한 자료와 영상 등을 갖추고 있다.
건립비 67억 원 가운데 27억 원은 국민성금으로 보탰다. 국채보상운동 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담배 끊은 돈이나 비녀를 판 돈을 모았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대구가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이 된 이유는 서상돈(1850∼1913), 김광제(1866∼1920) 두 분의 독립지사 덕분이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서 지사는 10세 때 대구에 정착한 뒤 대구의 출판사인 광문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자는 운동을 제안했다. 광문사 사장이던 김 지사 등의 참여로 국채 갚기 운동은 조선8도로 확산됐다. 당시 평안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중근 의사도 적극 참여했다.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거의 1300만 원이 될 것이니…”라는 구절은 1907년 2월 21일 시작한 국채보상운동 취지문으로 유명하다. 1300만 원은 당시 대한제국 1년 예산에 해당된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