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금석 대위가 귀순할 당시 모습. 블레인 하든 씨 제공
탈북자 신동혁 씨의 탈출기를 그린 화제작 '14 수용소 탈출'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포스트 동아시아 특파원(62)이 차기작으로 6·25전쟁 직후 미그 15 제트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 노금석 대위 탈출기를 집필 중이다. 올 상반기에 집필을 끝내고 연말 또는 내년 초에 발간할 예정이다.
하든 씨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 젊은이의 60년 시간차를 뛰어넘은 북한 탈출기를 책으로 내는 것에 대해 "북한 독재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은 저널리스트의 의무"라며 "북한 문제는 나에게 개인적인 관심사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소명(calling)'이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특파원을 지내며 코소보 아프리카 등 위험 지역을 취재해 여러 권의 책을 낸 하든 씨가 하나의 주제(북한)로 연이어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의 가제는 '위대한 수령과 조종사(the Great Leader and the Pilot).' 노 대위 귀순 배경을 통해 3대로 이어지는 북한 김씨 일가 독재의 시초를 집중 분석할 예정이다. 노 대위는 공군 대위에 임관해 김일성을 세 차례 만났다. 1인 독재 우상화 작업에 주민들을 동원하는 김일성의 통치술을 가까이서 직접 볼 수 있었다.
김일성을 만났을 때의 암울한 경험과 북한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노 대위로 하여금 귀순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하든 씨는 "21세의 나이에 임관해 북한의 엘리트로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노 대위가 위험을 무릅쓰고 휴전선을 넘은 사연은 백 마디 말보다 북한 체제의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1953년 9월 북한의 살벌한 감시를 뚫고 휴전선 상공을 넘은 노 대위는 미그기를 몰고 자유세계로 탈출한 첫 사례였다. 당시 기관포에 탄약까지 장전하고 귀순한 노 대위는 미국과 서방세계가 미그기를 연구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노 대위는 미그기에서 내리며 북한군 견장을 떼어 버리며 "공산주의를 떠나 기쁘다"고 말해 남한 사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번 책은 '14 수용소 탈출'을 읽은 노 대위가 직접 연락해 오면서 시작하게 됐다. 올해 82세의 노 대위는 귀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델라웨어대를 졸업한 그는 보잉 제너럴 다이나믹스 등 미 군수업체에서 근무하다가 은퇴해 현재 플로리다에 거주하고 있다. '14 수용소 탈출' 출간 후 하든 씨는 노 대위를 인터뷰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시애틀에서 플로리다를 10여 차례 방문했다. '14 수용소 탈출' 강연 및 책 사인회와 집필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노 대위를 만나 얘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고 한다.
통역이 필요했던 신동혁 씨와는 달리 영어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인터뷰 진도는 빨랐다. 하든 씨는 "노 대위의 탈출 스토리가 워낙 극적이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5, 6시간씩 한 자리에서 얘기를 들었다"며 "그의 귀순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위에 대한 한국 자료를 찾으려고 했지만 거의 찾을 수 없었다"며 "귀순용사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포스트 동아시아 특파원.
그는 "최근 수년 동안 미국에서는 '북한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북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으로 동아시아를 취재하던 시절 그는 회사로부터 "다른 지역에 대한 기사는 쓸 것도 없다. 북한에만 관심을 가져라"라는 지시를 받았을 정도였다. 동아시아 탈북 루트를 취재하다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14 수용소 탈출'을 쓰게 된 배경이었다.
2012년 출간된 '14 수용소 탈출'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국 외교 전문가들의 필독서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5월에야 '늑장' 출간됐고 지금까지 총 27개국어로 번역됐다. 그는 "북한 인권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나라는 한국"이라며 "이번 책은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장 먼저 빛을 봤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