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착한 병원] ‘3시간대기 3분진료’ 관행에 메스
12일 서울시립북부병원 부종클리닉을 찾은 중년 남성 환자가 의사와 초진 상담하고 있다. 이 환자의 진료는 30분 넘게 진행됐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환자들에게 의사의 말 한마디는 목숨과도 같다. 친절한 상담 한 번만으로도 환자들은 큰 힘을 얻는다. 하지만 병원에서 의사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분. 종합병원의 경우 3시간 대기하면 진료 시간은 3분도 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인 현실 속에서 ‘3분 대기, 30분 진료’로 바꾸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병원이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초진 환자 30분 진료, 재진 환자 10분 진료’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립북부병원이다.
○ 꼼꼼한 설명, 자세한 문진… 30분이 훌쩍
광고 로드중
11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북부병원 1층 부종클리닉 진료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 앉자 정훈 서울북부병원 내과 과장이 환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최근 손발이 자주 부어 클리닉을 찾은 환자 이모 씨(57)는 “잠을 잘 못 잔 지 서너 달 됐어요. 눈이랑 손발이 좀 붓고…”라며 증상을 하나둘 얘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있었나요? 이전에 고혈압이나 당뇨병은 없었나요?” 정 과장은 이 씨의 증상을 들으며 타자를 치던 손을 멈추고 환자의 눈을 바라봤다. 이 씨는 “고혈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확실히 모르겠고요. 당뇨병은, 약 먹은 지 10년 정도 됐어요. 당뇨병 합병증도 신경 쓰여서…”라며 고민을 털어놨다.
3분 정도 경과했지만 진료는 끝날 줄 몰랐다. 오히려 본격적인 문진이 시작됐다. 정 과장은 이 씨의 가족력과 평소 생활습관, 하루 일과 등을 꼼꼼히 체크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이 씨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B형 간염이 있을 때 한창 술을 많이 마셔 운동하다 쓰러질 뻔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역류성 식도염이 심하다고 해 약을 먹었다” 등 본인의 현재 건강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말들을 이어갔다.
“발이 좀 붓는다고 하셨죠? 양말 좀 벗어 보실까요?” 14분 정도 경과하자 정 과장은 책상에서 나와 허리를 굽히고는 환자 발을 쿡쿡 눌러봤다.
광고 로드중
○ 넉넉한 진료 시간, 환자 의사 모두 ‘대만족’
진료를 마친 이 씨는 “궁금한 걸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좋았다”며 “어떨 때는 ‘이런 걸 물어봐야지’ 하고 갔다가 까먹은 적이 많았는데 여기선 대화하듯 얘기하니 생각이 더 잘 나더라”고 했다.
이날 30분 진료를 받은 다른 환자 김모 씨(39)도 “예전에는 증상만 얘기하고 약 처방을 받으면 1∼2분 만에 진료가 끝나 매번 아쉬웠다”며 “오늘은 내가 알지 못했던 증상까지 의사가 예측해 짚어주니 도움이 컸다”며 만족했다.
정 과장은 “병력만 자세히 물어봐도 환자의 상태를 절반 이상은 파악할 수 있다”며 “솔직히 정신없이 환자들을 여러 명 진료할 때는 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의사로서도 같은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짧게 보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꼼꼼히 진료하는 게 더 보람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공들여 진료하면 재진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광고 로드중
새로 추가된 클리닉은 성인예방접종 클리닉, 부종 클리닉, 치매 클리닉 등이다. 진료 시간이 길다 보니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인원은 제한돼 있다. 12개의 클리닉은 오전 오후에 2개씩, 하루 4개가 열리고 환자는 평균 10명 안팎, 많을 땐 스무 명 내외다.
○ “30분 진료는 공공 의료원의 책임감”
물론 환자들이 많은 민간 병원에선 30분 진료를 현실화하긴 힘들다. 진료 수가가 낮아 환자들을 적게 받으면 병원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서울북부병원에서도 30분 진료를 모든 과에서 전면 시행하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권용진 서울북부병원 원장은 “30분 진료가 가능한 건 우리 병원이 서울시의 재정보조를 받는 국공립 병원이기 때문”이라며 “민간 병원에서 하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 원장은 “환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진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먼저 앞장서는 것이 공공 병원이 해야 할 일”이라며 “시험 운영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 이진한 기자·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