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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병준]규제개혁과 복지재정 확대가 함께 가야

입력 | 2014-02-11 03:00:00

소득격차 알려주는 지니계수… 한국-스웨덴 얼핏 보면 비슷
정부기능 강한 스웨덴은 오히려 규제엔 자유로워
시장기능-정책 확대는 모두 중요… 서로 겉돌지 않게 조화 이뤄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빠르고 깊은 변화가 일어나는 세상, 시장은 무엇을 해야 하고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를 들으면서 새삼 이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현듯 모두들 부러워하는 복지국가 스웨덴이 생각났다.

스웨덴은 시장에 대한 규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5위 정도다. 규제가 적은 순서로 15위이지만 1위와의 정도 차이가 크지 않아 상위권에 속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극렬히 반대하는 영리 의료법인까지 허용한다. 시장이 자유로운 만큼 잘 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수입 격차도 크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38이다. OECD 국가 최고 수준의 격차와 불평등이다.

그러나 가처분소득, 즉 국가에 낼 돈은 내고 받을 것은 받고 한 뒤의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는 0.25로 뚝 떨어진다.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국가 중 하나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가 국내총생산의 47%를 세금 등으로 거두어 그 상당 부분을 지속 성장과 경제적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으로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0.32로 시장소득에서 스웨덴보다 훨씬 평등하다. 평등하다니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로 시장에 대한 규제는 OECD 국가 중 25위일 정도로 심하다. 반면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30으로 스웨덴보다 0.05나 높다. 국가의 교정 역할이 0.02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가 거둬들이는 것이 국내총생산의 26% 정도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적다. 뭘 그리 크게 교정할 수 있겠나.

스웨덴이 시장을 성장의 축으로, 또 국가를 지속 성장과 분배의 축으로 삼고 있는 경우라면 우리는 시장과 국가 모두의 기능을 위축시키고 있는 경우다. 시장은 규제에 묶여 있고 국가는 낮은 재정능력에 묶여 사회정책적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스웨덴과 똑같이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정이 다르니 꼭 그렇게까지 돼야 할 이유도 없다. 보고 느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과 국가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를 묶어 둘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규제개혁 선언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계속 강조해 온 복지 문제와 복지재정 확보 문제를 묶어서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규제를 풀어 시장 기능을 살리는 한편 복지와 재정 확대를 통해 국가의 사회정책적 기능도 살리겠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 개운하지가 않다. 이 둘, 즉 시장기능 확대와 국가의 사회정책적 기능 확대가 잘 연결되지 않은 채 따로 돌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 억지로 하나씩 들고 있는 형상이다.

이미 거론되고 있는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다. 공공의료가 약화될 가능성에다가 동네 의원이나 산후조리원 등이 고통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복지나 사회정책적 기능 확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것 하나에서부터 잘 연계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가. 이에 관한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만 있다.

여기에 복지재정 확보를 위한 조세개혁 문제를 더하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규제개혁은 기업과 자본에 큰 혜택을 주는 것이다.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자잘한 규제가 아니라 ‘넝쿨 규제’, ‘덩어리 규제’와 같이 큰 틀의 규제를 풀겠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증세를 협의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 또한 따로 움직인다. 최근 들어 이 문제는 아예 뒤로 빠져 있다.

앞의 정부들이 실패했거나 제한적 성공만 거둔 일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규제 하나하나에 이해관계와 신념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 그 자체만 이야기해서는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성공한다 해도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규제개혁이 수반할 문제들에 대해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에 대한 고민과 함께 국정의 중요한 과제들이 왜 이렇게 조각이 나 있는지도 같이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