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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뒷談]서울 강남 성형외과에선 무슨 일이

입력 | 2014-01-25 03:00:00

같은 턱인데… “T절골” “양악수술” “지방주사” 제각각 진단




“요즘은 내가 성형외과 의사라는 게 정말 부끄러워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 A 씨는 23일 기자를 만나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성형의 메카’ 강남에서만 1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해 왔는데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라고 했다. 요즘 다른 과 전문의 동료들을 만나면 “너 아직도 성형외과 의사 하느냐?”는 농담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성형외과’는 2014년 벽두부터 한국 사회를 뒤흔든 키워드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이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한 데 이어 현직 검사가 연예인의 성형 재수술을 요구하며 이 성형외과 원장을 협박해 돈을 받은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강남의 또 다른 성형외과는 수술 환자들의 실제 턱뼈를 유리 기둥에 담아 전시하며 실적을 자랑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 32곳을 일일이 찾아 ‘성형외과의 천태만상’을 살펴봤다. 환자를 가장해 수술 상담을 받아 보기도 하고, 기자임을 밝히고 원장을 만나 고충을 듣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 똑같은 얼굴에 견적은 천차만별

“제 인상이 촌스러워 콤플렉스가 많은데 어딜 고쳐야 할까요?”

본보 강병규 수습기자(25)는 23일 환자를 가장해 강남 일대 성형외과 6군데를 찾아 원장과 상담실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똑같은 얼굴을 병원마다 어떻게 다르게 진단하는지 궁금했기에 수술을 원하는 부위를 따로 말하지 않았다.

강 기자의 얼굴을 살펴본 이들은 판이한 진단을 내놨다. 한 병원은 콧대에 보형물을 넣어 코 연골을 묶어 올리고(290만 원) 팔자 주름을 펴 주는 보형물을 넣은 뒤(150만 원) 턱뼈를 절개(400만 원)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병원은 광대 지방이식(150만 원)과 턱 보톡스(15만 원)만 하면 된다고 했다. 코의 크기를 줄여 주는 ‘매부리코 축비술’과 눈매 교정, 턱 보톡스를 권하는 병원도 있었다. 견적도 165만∼840만 원으로 천차만별이었다. 강 기자는 키 183cm 몸무게 88kg의 건장한 체격에 자기 나름으로는 괜찮은 얼굴을 가졌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날만큼은 좌절에 빠졌다.

김재형 수습기자(27)는 이날 성형외과 3곳에서 상담을 받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똑같은 턱과 코를 두고 병원마다 전혀 다른 진단을 내놨기 때문이다. 처음 찾은 성형외과에선 “턱 비대칭을 맞추는 ‘3D 돌려 깎기’와 하관을 줄여 주는 ‘T절골’, 무턱을 교정하는 ‘턱 끝 전방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직후 찾은 다른 성형외과에선 “전혀 수술할 필요 없는 턱이다. 오른쪽 턱에 지방주사만 넣으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김 기자의 혼란은 세 번째 찾은 성형외과에서 극에 달했다. 이곳에선 “턱을 보니 양악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김 기자가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병원 상담실장은 “정 그러면 턱 끝 전방술로 무턱 교정을 하고 보형물을 넣자”고 권했다.

여성인 오소영 인턴기자(24)는 “취업을 앞두고 있는데 무턱과 볼이 고민”이라며 성형외과 5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입 안쪽을 절개해 실리콘 보형물을 넣는 수술(250만 원)만 하면 충분하겠다”는 성형외과가 있는 반면 “광대를 45도 깎고 앞턱을 자르고(1500만 원), 볼 안쪽 지방 주머니를 제거하는 ‘심부 볼 제거 수술’(130만 원)을 해야 한다”는 병원도 있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얼굴에 살이 많고 처져서 피곤해 보인다”며 이마를 위로 당기는 ‘이마 거상’(165만 원)과 레이저를 피부에 쏴 지방을 태우는 ‘아큐리프팅’(165만 원)을 권하기도 했다. 대체로 수술비가 1000만 원을 넘었다.

성형외과 취재를 마친 기자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을 잃은 표정이었다. 평소 외모에 특별한 불만 없이 살아온 이들도 수차례 상담을 받고 보니 ‘내 얼굴이 정말 많이 부족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윤리이사 황규석 전문의는 “성형외과를 고를 때 가장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상담 내용과 무관한 수술을 권하는 의사를 피하는 것”이라며 “수술은 가능한 한 최소 범위로 받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연예인과 검사, 성형외과가 얽힌 사건이 벌어지면서 성형외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술을 받은 여성들이 부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병원을 찾는 모습은 성형외과 밀집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주말마다 비행기 타는 성형외과 의사들

‘성형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일대는 최첨단 의료 기술과 갖가지 마케팅이 총집합된 곳이다. 강남구에 따르면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만 377개(2013년 12월 말)에 이른다. 피부과나 이비인후과 간판을 걸고 성형 환자를 받는 병원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요즘 강남권 일부 성형외과 원장들은 주말에 비행기를 타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 성형에 대한 해외 현지의 수요가 늘어 원정 진료를 떠나는 것이다. 주로 토요일 오전에 출발해 일요일 밤에 돌아온다.

청담동 성형외과 원장 B 씨(42)는 2년 전에 처음 원정 진료를 알게 됐다. 브로커를 통해 중국 현지 병원을 소개받으면 가슴 성형 등 비싼 수술을 원하는 환자들을 접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브로커에게 한국의 전문의 자격증을 건네면 현지에서 합법적으로 수술할 수 있도록 조치해 준다고 했다. 보통 현지 병원에서 환자를 수술해 주면 하루에 2만 위안(약 356만 원) 정도 받는데 주말 이틀 동안 600만∼700만 원을 벌 수 있는 원정 진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일부 의사들은 브로커 비용을 줄이려고 현지 병원 인맥을 통해 환자를 직접 소개받기도 한다.

강남으로 성형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도 이젠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2, 3년 전만 해도 외국인 환자들은 대부분 브로커를 통해 병원을 소개받았다. 브로커들이 비용의 최대 50%를 수수료로 요구하는 사례도 있어 외국인은 한국인과 똑같은 수술을 받고도 턱없이 높은 비용을 내 왔던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환자들이 점점 ‘알뜰한 성형’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을 통해 추천을 받거나, 브로커 없이 통역사만 구한 뒤 강남 일대 성형외과를 돌아다니며 가격을 비교하고 결정한다. 역삼동 성형외과에서 만난 중국인 톈리 씨(24)는 “이마와 광대 쪽에 지방 이식을 받으러 왔다”며 “친한 중국 연예인이 추천해 줬는데, 그 연예인은 한국 연예인의 소개를 받아 수술했고 아주 만족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환자 상당수가 중국인이라 중국어 명함을 따로 갖고 있는 의사도 제법 많다.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한국 환자를 상대로 하는 성형 시장은 이제 성장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외국인 환자에게 사활을 걸어야 하는데 대부분 대형 병원을 선호해 개인 병원 원장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진상 환자’에 우는 강남 성형외과

성형 수술 결과에 불만을 터뜨리며 재수술이나 금전 보상을 요구하는 ‘진상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규모가 작은 개인 병원이 취약한 편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 사고에 대비해 1년에 300만∼400만 원을 내고 최대 1억∼2억 원을 보장받는 의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데 개인 병원 원장들은 이때 별도로 경호 특약을 맺기도 한다.

청담동 성형외과 개업의 C 씨(43)는 최근 가슴 확대 수술을 했던 환자가 수차례 병원을 찾아와 고성을 지르며 항의해 결국 무료로 재수술을 해 주고 보상금까지 얹어 줬다. “인터넷에 글을 띄워 다시는 영업 못 하도록 하겠다” “탈세로 고발해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 “향정신성의약품 관리 허술로 고발해 영업정지 당하게 하겠다” 등 다양한 수법으로 압박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C 씨는 “수술 결과에 아무 이상이 없어 보여도 병원에 와서 소리 지르고 행패를 부리면 적당히 돈을 주고 무마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며 “혹시나 환자들 사이에 불만 많은 병원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연예계도 강남 일대 성형외과와 뗄 수 없는 사이다. 일부 유명 연예인은 무료 수술에 계약금까지 별도로 받는 조건으로 병원 홍보를 해 주기도 한다. 일부 중소 연예기획사들은 “연습생들 피부 관리를 싼 가격에 해 주면 나중에 성공했을 때 병원을 적극 홍보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이번에 턱뼈탑으로 물의를 빚었던 성형외과를 두고 “과태료를 좀 내겠지만 돈 주고 못할 홍보 효과를 누렸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러워할 만큼 병원 홍보가 아쉬운 원장들은 연예계의 제안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일부 범죄자는 수술로 얼굴을 고쳐 추적을 피하려고 종종 성형외과를 찾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범죄자가 ‘페이스오프’를 시도하러 성형외과에 갔다간 오히려 덜미를 잡힐 개연성이 크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경찰청과 공조해 의사회 홈페이지에 수배자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띄워 두는 시스템이 곧 완성되기 때문이다. 병원을 찾은 환자가 수배자와 동일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의사는 홈페이지에서 신고 버튼을 클릭해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할 수 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오소영 인턴기자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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