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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변호인’의 요트와 고문

입력 | 2014-01-23 03:00:00

고문 장면 길고 리얼하게 묘사… 요트 장면은 생략한 이유 궁금… 아들에게도 사준 노변의 요트 사랑
그 시절 경찰 대공분실 악명 높아 고문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
돈도 벌고 인권변론으로 성공한 ‘변호인’이 성공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영화 ‘변호인’에서 노무현 변호사는 요트 부두로 찾아와 ‘부림’ 사건의 변론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 김광일 변호사에게 “날 보고 돈 많이 벌어 비싼 호화 요트 샀다고 하는데 이거 내년 88올림픽에 요트 선수로 나가려고 산 겁니다”라고 말한다. 영화에 노 변호사가 요트 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정지욱 평론가는 “요트에서 사랑을 나누는 영화가 아니니 꼭 넣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 변호사가 돈을 모으는 모습을 꽤 리얼하게 그렸으니 그렇게 번 돈으로 요트를 즐기는 장면까지 담았더라면 영화적 재미를 살리는 데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다룬 부림 사건의 실제 판사였던 서석구 변호사는 노 변호사의 요트를 타본 경험이 있다. 서 판사는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나중에 붙잡힌 부림 사건 피고인 3명에게 국보법 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노 변호사는 감사의 뜻으로 서 판사를 요트에 초대했다. 그날 노 변호사의 아들도 다른 요트를 타고 아버지의 요트를 따라왔다. 노 변호사는 “사나이의 패기를 심어주려고 아들에게 요트를 사줬다”고 서 판사에게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채널A에 출연해 “호화스러운 룸이 있는 요트는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변호사 부자(父子)의 요트가 광안리 앞바다를 나란히 달리는 장면은 허름한 노동자 복장을 하고 노사분규 현장을 찾아다니던 변호사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1년 통합민주당 대변인이 됐을 때 한 신문에 가시 돋친 프로필이 실렸다. 청문회 스타, 노사분규 현장을 자주 찾아다님, 고졸의 변호사 출신, 부산요트클럽 회장으로 개인 요트 소유, 상당한 재산가…. 노 대변인은 이 프로필을 반박하는 보도자료에서 척당 가격이 200만∼300만 원인 소형 스포츠용이고 동호인 클럽 회장을 지낸 적은 있으나 부산요트클럽 회장을 지낸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반박자료의 3분의 2가량을 요트에 대한 해명에 쏟고 있다. 당시에는 요트가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노무현은 그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뒤 화해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지금 돌아보면 동호인 클럽 회장을 부산요트클럽 회장으로 잘못 쓴 것 이외에는 그 프로필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노무현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 프로필이 비주류 정치인에 대한 주류 언론의 횡포를 증명하는 문서인 것처럼 두고두고 써먹었다. “88올림픽에 출전하려고 주말마다 요트를 탔고 일본에 가서 요트선수 자격증을 따왔다”는 이야기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MBC 추모특집에서 처음 나왔다. 이 특집에서도 아들에게 사준 요트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이 영화에서 꽤 길게 이어지는 잔혹한 고문 장면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 변호사는 당시 노 변호사가 부림 사건 법정에서 피고인들이 당한 고문 사실을 폭로해 이 사건의 사회적 주목도를 높였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의 공소유지를 맡았던 검사들은 지금도 고문의 존재를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림 사건 피고인들은 대공분실에서 구치소로 옮겨지기 며칠 전부터 경찰이 소염제 연고를 발라 고문 흔적을 지웠다고 회고한다.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경찰 대공분실의 고문은 안기부 지하실보다 더 악명이 높았다. 김근태 전 의원을 전기 고문한 이근안도 대공분실 출신이다. 박종철 군을 물고문하다 죽인 곳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나는 노 변호사가 법무사와 세무사 영역에까지 손을 대 ‘자루에 담을 정도로’ 돈을 벌고, 나중에는 인권변호사로서 이름을 높인 성공한 ‘변호인’이었을지는 몰라도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반미성향을 가진 사람이며 아마 미친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고 평했다. 우방국의 국가원수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은 논평이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했던 그 경박한 언사로 대했다면 게이츠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변호인’의 1000만 관객 중에는 비명(非命)에 간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애틋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로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이용해 노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쪽이 정치적인 힘을 결집하려 든다면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분명하게 가려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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