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고단’ 펴낸 윤병무 시인조급하게 낸 첫시집의 후유증… 오랜동안 절필하고 밥벌이만담담하게 그리는 일상의 소묘… 생활속에 담긴 진실-진심 추구
1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윤병무 시인. 시인은 “이번 시집은 혼자 먹는 밥 같은 것”이라면서 “나는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발견이 더 기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양=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불고기 전골에 금세 비워지는/아이들의 밥그릇을 보면서/떳떳한 가장은 만면에 웃음을 띤다 (‘불고기 전골’). 》
윤병무 시인(48)은 일상의 애잔한 서정을 가닥 지어 시를 짠다. 시인 스스로 ‘직무유기’라고 할 정도로 그 손놀림은 더디다. 1995년 등단한 그가 이제야 두 번째 시집 ‘고단’(문학과지성사)을 최근 내놨다. 첫 시집 ‘5분의 추억’ 이후 13년 만이다.
“계속 일을 하다가 아무 할 일이 없으니 허망했어요. ‘이제 뭐하지…’ 했는데 그동안 잊고 있던 시를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40여 편을 썼더라고요. 이 두 달 동안 써낸 시를 중심으로 새 시집을 묶어냈습니다.”
지난해 봄은 10년 넘게 밀쳐둔, 먼지 쌓인 상자를 열어젖힌 시간이었다. 촉망받는 신예였던 그가 시를 밀쳐낸 것은 첫 시집 때문이었다.
“첫 시집을 너무 급하게 냈어요. 당시 문예지에 어떤 시인이 등단했는데, 시상이 나와 비슷했어요. 자칫하면 아류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죠. 시집이 나온 뒤에 후회했어요. 절반은 다 버려야겠더라고요. 이것저것 뒤섞인 지저분한 밥상 같았어요. 이후에 시를 잘 못 쓰게 됐어요.”
살뜰한 네 식구의 가장으로서 살아온 인생, 그의 두 어깨를 누르는 고단하고 비루한 삶의 무게는 백수가 된 어느 날부터 시에 실렸다. 그는 ‘이만한 일로 갑자기/설사처럼 시가 마구 써지다니’(‘시작(詩作)’ 중)라고 털어놓는다.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침의 눈곱이에요. 눈곱은 눈물의 찌꺼기, 나는 간밤에 자면서 눈물을 흘렸구나. 그런 일상의 발견, 생활의 흔적들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어요. 늘 그 속에 담긴 진실과 진심을 찾아 헤맵니다.”
함성호 시인은 윤병무의 시에 우리 시사(詩史)에서 간과되는 생활의 서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생활하는 자의 슬픔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삶 자체의 슬픔이 있다고.
‘아내가 제 손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고단했던가 봅니다/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제가 아내보다 먼저/세상의 손 놓겠지만/힘 풀리는 손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그날 오면 아내의 손 받치고 있던/그날 밤의 저처럼 아내도 잠시 제 손 받치고 있다가/제 체온에 겨울 오기 전에/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아내 따라 잠든 제 코 고는 소리 서로 못 듣듯/세상에 남은 식구들이/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고단(孤單)’)
고양=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