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치료말라” 방치… 병원은 “수술해 살리겠다” 가처분신청
지난해 12월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만삭의 A 씨(여)가 응급실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다. 남아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여아는 2.14kg의 미숙아였다. 여아는 다운증후군인 것으로 확인됐고 십이지장 폐쇄증과 심장질환(심방심실 중격 결손) 증상까지 나타났다. 문제는 부모가 여아의 치료를 거부한 채 건강한 남아만 데리고 일방적으로 퇴원하면서 시작됐다.
○ 부모 ‘치료 거부’ vs 병원 ‘수술해야’
의료진은 막힌 십이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지난해 12월 26일 실시할 예정이었다. 비교적 쉬운 수술이어서 후유증 없이 완치가 가능했다. 의료진은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사회구호기관 등의 지원을 받는 방법도 안내했다.
수술이 지연되면서 여아가 폐렴 또는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부모의 동의를 받지 못해 수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계속 방치하면 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대병원은 13일 A 씨 부부를 상대로 수원지법 여주지원에 수술 동의 및 진료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현행법은 수술이나 치료를 친권자나 당사자 동의 없이 병원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신 법원의 허락을 받아 수술을 하겠다는 것이다.
○ 정당한 의료권 범위 놓고 논란 재연될 듯
병원 측이 법원의 허가를 받으려는 것은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치료를 하지 않다가 자칫 아이가 숨지게 되면 병원 측이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깔려 있다.
분당서울대병원도 최근 의료윤리위원회를 열고 여아에게 위급 상황이 생기면 부모의 동의가 없더라도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병원 측은 “아이를 방치하면 숨질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고 기존 ‘보라매병원 사건’처럼 살인방조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수술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수술을 허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자녀의 생명과 신체의 유지나 발전을 저해하는 친권자의 의사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를 일관되게 지켜왔다. 2010년 서울동부지법은 부모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신생아에 대한 수술을 거부하자 병원 측이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결정한 바 있다.
○ 수술 허가 가능성 크지만, 양육 문제 미지수
법원 결정에 따라 여아를 수술한다면 수술비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신 지급해주고 나중에 환자로부터 돌려받는 ‘응급의료비 대불제’로 충당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A 씨 부부도 아이를 계속 방치하다 숨질 때에는 유기죄 또는 유기치사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최근 법원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생후 15개월 된 아기를 추운 베란다에 장시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30)와 고모 씨(23·여) 부부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과 2년을 선고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