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빛나는 순간-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성제환 지음/380쪽·1만9800원·문학동네
르네상스 시대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메디치 가문을 포함해 당시 신흥 상인들은 왜 거액을 들여 천재예술가에게 성당이나 수도원 벽면을 장식하게 했을까? 예술을 너무나 사랑해서?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인 저자는 ‘천국 입성’과 ‘정치적 야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상인들은 현세에서 더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사후 세계였다. 죽음은 공포였다. 종교적으로 엄격히 금지하는 고리대금업으로 대부분 돈을 벌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수도원 지하에 묻힌 수호성인과 가까운 곳에 안장되기를 원했다. 최후의 심판장에 설 때 수호성인이 변호에 나서 줄 것이라고 믿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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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신흥 상인세력 중 하나였던 메디치 가문은 정치적 힘이 귀족이 아닌 시민에게서 나올 것임을 예견했다. 이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산마르코 수도원을 짓고 동방 박사 경배 축제를 부활시켜 시민의 지지를 확보했다.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가가 이끄는 새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익숙한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 맛보는 새로움에, 빠른 속도로 책장이 넘어간다. 그동안 르네상스의 파도만 봤다면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읽게 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드는 생각 하나.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에 적극 나서려면 지극히 현실적인 동인이 필요하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지갑을 활짝 열게 하는 데는 선의만으로는 2% 부족하니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