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우리를 잊지 않도록/윤환 지음/152쪽·8000원·청어
짧은 생이었지만 소년은 자신의 인생과 세상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보들레르의 ‘악의 꽃’,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즐겨 읽던 윤환(1996∼2013).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시를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냈다. 윤환이라는 영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고, 그 아이가 꿈꿨던 세상과 고민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소년은 시 곳곳에 ‘운명’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혼자인 것이 운명이라면 따라야 한다’(‘순응1’), ‘운명은 목 놓아 울고 모든 것이 변했구나’(‘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 ‘이런 떠나감이 운명이라는 것이다’(‘단 한 번의 인사’). 류근 시인은 “소년에게 운명이란 끝끝내 자신을 찾아가는 고행”이라고 진단한다.
광고 로드중
내 온 마음으로 시를 사랑한다고, 가슴으로 느낀다고 적어 내려간 소년은 저 먼 별로 떠나기 전 시에 모든 것을 오롯이 담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의 세월을/기록할 수밖에 없다/시간이 우리를 잊지 않도록’(‘시간이 우리를 잊지 않도록’)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