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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로퍼, 마돈나에 밀렸지만…뮤지컬 거장으로 ‘우뚝’

입력 | 2013-12-29 12:05:00


신디 로퍼와 마돈나. 1980년대, 팝계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었다. 음악적 재능은 신디 로퍼가 더 뛰어났다. 하지만 마돈나는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아는 여자였다. 대중 음악계에선 재능보다 매력이 더 큰 성공 요인이 된다는 걸 두 사람은 '세기의 경쟁'을 통해 보여줬다.

29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80년 대 팝계를 양분했던 여성 가수 신디로퍼와 마돈나의 대결구도를 다뤘다.

나이는 1953년생인 신디 로퍼가 1958년생인 마돈나보다 몇 살 더 많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신디 로퍼는 12세 때부터 작사 작곡을 하며 선천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반면 시골 출신인 마돈나는 성공에 대한 열망을 품고 뉴욕으로 향했다.

신디 로퍼와 마돈나는 1983년 비슷한 시기에 데뷔 앨범을 냈다. 결과는 신디 로퍼의 완승이었다. 그 유명한 쉬밥(She Bob)이 들어있는 앨범이다. 반면 마돈나의 데뷔앨범 '홀리데이'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 했다.

신디 로퍼는 현란한 무대의상과, 튀는 춤, 반항적인 말괄량이 스타일의 창법 등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신디 로퍼는 그냥 가수가 아닌 싱어송라이터로의 면모를 과시했고 데뷔와 동시 그래미상까지 거머쥐었다. 반면 마돈나는 짧은 머리에 보이시한 매력을 뽐냈지만 빌보드 차트 진입에 실패했고, 신디 로퍼에 가려져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돈나는 섹시함의 대명사인 마릴린 먼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84년 '라이크 어 버진'을 발표했다. 마돈나는 짧은 갈색 머리와 보이시를 벗어던지고 화려한 금발, 붉은 입술, 자극적인 의상으로 외모에 변화를 줬다.

뇌쇄적인 입술, 도발적인 춤과 몸짓, 요염한 입술은 마돈나의 상징이 됐다. 또 건장한 사내를 백댄서로 세위 자신의 여성미와 섹시를 부각시켰다. 무대에 침대를 올리고 채찍 같은 소품으로 과감한 퍼포먼스를 해 남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는 폭발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게다가 마돈나는 섹시 심벌 이미지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 성인잡지에 누드사진을 유출, 이슈거리를 만들었다. 결국 마돈나는 2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팔아치웠고 '마돈나 워너비족'을 양산했다.

그리고 마돈나는 1986년 '트루 블루'를 발표했다. 이 때 신디 로퍼는 마돈나에게 정면 승부를 하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신디 로퍼는 마돈나와 비슷한 '트루 컬러'를 발표하며 기존의 귀엽고 발랄한 소녀풍이 아닌 섹시미를 강조했다. 심지어 세미 누드와 키스신까지 선보이며 마돈나에 정면으로 도전을 하게 된 것.

그는 잃었던 여왕 자리를 되찾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마돈나를 따라했다는 비난이 난무했고 팬들도 등을 돌렸다. 마돈나는 전 세계적으로 2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최고의 빅히트를 쳤다. 반면 신디 로퍼는 마돈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변화의 타이밍을 놓친 신디 로퍼와는 달리 마돈나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알고 변신을 거듭했고 대중들은 열광했다. 마돈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신디 로퍼는 처음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후 신디 로퍼는 2005년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 데뷔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결국 지난 6월 뮤지컬 '킨키 부츠(Kinky Boots)로 최고 권위의 토니상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하며 마돈나와는 다른 성공을 맛봤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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