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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로 그린 예수의 삶… 4색 버전으로 조각한 ‘LOVE’

입력 | 2013-12-24 03:00:00

크리스마스 시즌에 볼만한 두 전시




거리에 화려한 트리가 등장하고 백화점들은 반짝이는 전구 장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소비와 욕망을 부추기는 잔치처럼 변해 가는 성탄절 풍경 속에서 예수 탄생의 소중한 메시지를 되새기는 기회를 미술관에서 만났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운보 김기창(1914∼2001)의 ‘예수와 귀 먹은 양’전이다.

화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전시에선 미술관 소장품인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을 중심으로 대표작을 두루 선보였다. 운보의 붓끝에서 태어난 연작은 신약성서의 주요 내용을 압축한 것으로 전통 기법으로 완성된 한국적 성화(聖畵)의 드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전시 제목에서 ‘귀먹은 양’은 일곱 살에 열병을 앓고 청각을 잃어버린 운보의 침묵과 고독을 빗댄 말이다. 내년 3월 16일까지. 5000∼9000원. 02-395-0100

물질과 쾌락이 아니라 세상과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신관에서 열리는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 씨(85)의 ‘사랑 그 이상’전에선 알파벳을 조합한 ‘LOVE’ 글자 조각을 통해 사랑을 성찰할 여유를 선사한다. 조각과 더불어 회화와 전구 설치작품도 내놨다. 내년 1월 12일까지. 02-2287-3585

○ 청각을 잃은 운보의 침묵과 고독

화가 운보 김기창이 피란 시절에 제작한 ‘예수의 탄생’ 연작 중 ‘아기 예수의 탄생’.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와 한복 차림의 마리아를 담은 한국적 성화로 서울미술관의 ‘예수와 귀먹은 양’전에서 선보였다. 서울미술관 제공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한복 차림으로 물레 타는 마리아에게 구름 타고 온 선녀가 말한다. ‘수태고지’로 시작된 ‘예수의 생애’는 외양간이 배경인 ‘아기 예수의 탄생’, 갓 쓰고 도포 입은 제자들이 등장하는 ‘최후의 만찬’ 등 이 땅의 산천과 풍속, 이 땅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운보는 1951년 아내인 동양화가 박래현(1920∼1976)의 친정집이 있던 전북 군산의 시골 마을에 피란 갔던 시절 이 연작을 그렸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 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던 운보는 예수의 고난과 한민족의 비극이 닮았다는 생각으로 1년 반 만에 독창적인 성화를 완성했다. 미술관에 따르면 오랜만에 공개된 ‘예수의 생애’를 보기 위해 교회와 성당 등지에서 단체 관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성화와 함께 다른 걸작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독수리를 그린 6폭 병풍과 ‘태양을 먹은 새’가 첫머리를 장식한 전시는 민화를 재해석한 ‘바보산수’, 청록 빛이 물결치는 ‘청록산수’, 서예의 획이 살아 있는 문자도 등으로 이어진다. 빠른 운필과 빼어난 구성력이 돋보이는 그림들은 전통의 계승과 실험 정신을 넘나들며 힘과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 LOVE, 글자가 조각이 되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표적 작품 ‘LOVE’. ⓒ 2013 Morgan Art Foundation, Artists Rights Society(NewYork)/SACK(Seoul)

1964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으로부터 크리스마스카드 제작을 의뢰받은 인디애나는 O자가 약간 기울어진 ‘LOVE’ 도안을 제작했다. ‘사랑을 하자, 전쟁이 아닌’이란 1960년대 반문화혁명의 구호와 맞물려 당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그림은 훗날 조각으로 변신했다.

그는 사람이 느끼는 가장 따뜻한 감정을 강렬한 작품으로 승화시켰으나 이로 인한 고통도 겪는다.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 작품 이미지는 온갖 상품에 범람했고 ‘상업작가’란 혹평이 따랐다. 하지만 올해 뉴욕 휘트니미술관 회고전이 열리는 등 재평가도 활발하다. 한국에서 7년 만에 열리는 전시에는 빨강 금색 등 4가지 버전의 ‘LOVE’가 등장해 크리스마스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