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회인야구 출신 포수 정규식
고양 원더스 포수 정규식이 10일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경기장 안에 있는 야구실내연습장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내야수였던 그는 교토국제고 3학년 때 주전 포수가 갑자기 야구를 그만두는 바람에 마스크를 썼다. “고시엔에 가고 싶은데 아무도 안 한다고 해서”가 그가 밝힌 이유다. 아래는 오사카가쿠인대 재학시절의 정규식. 고양 원더스·정규식 제공
“난 꿈이 있었죠/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간직했던 꿈”
우리는 모두 패자 부활전을 꿈꾼다. 세상에 나온 지 16년이나 된 ‘거위의 꿈’을 여전히 많은 가수가 다시 부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日야구 배운다는 부푼 꿈
“혹 때론 누군가가/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홀릴 때도/난 참아야 했죠/참을 수 있었죠/그날을 위해”
원더스 포수 정규식(23)은 석 달 전만 해도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빠찡꼬 가게에서 일했다. 빠찡꼬 기계를 조립하고 당첨 확률을 조정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매일 오후 1시까지 이 일을 해야만 그 뒤로 퇴근 전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경기 성남시에 자리 잡은 성일중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국제고로 야구 유학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그는 몰랐다. 야구부원만 200명이 넘는 야구 명문 오사카가쿠인대에서도 그는 엄연히 주전이었다. 부모님은 그의 성공을 기대하며 1년에 100만 엔이 넘는 학비를 부담했다. 당시는 100엔이 원화로 1600원이 넘던 시절이었다.
“늘 걱정하듯 말하죠/헛된 꿈은 독이라고/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퇴근 후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배팅볼을 하루에 30∼40개 치면 많이 훈련한 것이었다. 공격보다 수비가 더 중요한 포수 포지션이었지만 배터리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평생 운동만 한 선수에게 빠찡꼬 가게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게다가 팀 동료들이 가게 홀에서 일할 때 그는 홀로 가게 구석을 지켜야 했다. 일본 생활을 8년이나 했지만 그는 엄연히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정규식은 “억지로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운동이 안 될 때가 많았다”며 “그래도 일본말은 할 줄 아니까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도 일본 생활도 접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그 선택이 운명이 됐다. 정규식은 귀국길에 공항에서 고교 시절 학교 이사장을 만났다. 이사장은 동향(도쿄) 출신이라 인연이 있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사장은 정규식에게 그 자리에 함께 가자고 했다. 정규식은 “당연히 따라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그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 감독님께서 특강을 오신 적이 있었다. 그때 인사를 한 번 드렸을 뿐인데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라며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야구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정규식에게 김 감독은 명함을 남기며 “꼭 연락하라”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정규식은 원더스와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 두 번째 쓰는 야구 인생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요/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내 삶의 끝에서/나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원더스에 입단하자 모든 게 변했다. 이제 그는 원하면 하루에 배팅볼을 1000개도 때릴 수 있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배터리 코치로 뛰었던 스승들로부터 수비 자세도 점검받을 수 있다.
그는 LG와의 연습 경기에서 이대형(현 KIA)의 도루를 잡아내는 걸로 8년 만의 한국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정작 일본에서만 뛰었던 그는 경기 후 이대형이 얼마나 빠른 주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에 젊고 재능 있는 포수가 드물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원더스 관계자는 “롯데 강민호(28)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75억 원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훈련 때 더욱 기운을 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신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이승엽은 잘 안다. 그는 배팅볼을 던져주던 김광수 코치에게 “이승엽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의 타격 자세를 흉내 내 공을 쳤다. 홈런이었다. 조명탑에 불이 들어오고도 2시간 넘게 계속된 이날 타격 훈련은 그 홈런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서귀포=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