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정치부 차장
그제 언론계 몇몇 후배와 만난 고건 전 국무총리는 이렇게 말하며 허허 웃었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단골 음식점에서 오찬을 겸해 가진 조촐한 출판보고회였다.
‘국정은 소통이더라’라는 제목으로 곧 출간될 이 회고록은 550여 쪽 분량으로 그의 ‘공인(公人) 50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공자님 말씀’이 던지는 울림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국 상황과 무관치 않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등을 둘러싼 정치권의 한 치 양보 없는 다툼 속에 어느덧 박근혜 정부 1년차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일각에선 대선 후 1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부정선거 타령이고, 어느 원로신부라는 이는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까지 열더니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은 당연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에 대통령의 입에서 “용납하거나 묵과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게 요즘 현실이다.
여야는 적대적 공존을 넘어 ‘공멸의 길’로 접어들기로 작정한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기국회가 열린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여야가 뭘 합의해 처리했다는 기억이 없다. 오죽하면 김황식 전 총리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헌법에 왜 국회해산제도가 없는지…”라며 “국회해산제도가 있었으면 국회를 해산시키고 다시 국민 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일갈했을까.
문득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소설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떠오른다. 각 정당에서 100명의 지도자를 뽑은 뒤 2명의 훌륭한 외과의사로 하여금 이들의 머리를 반으로 잘라 반대편 정당 지도자의 머리에 붙이자는 거다. 그렇게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하게 되면 서로를 잘 이해하고 조화와 중용을 찾게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이 책에는 좀 더 현실적인 방안도 나온다. 의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변호한 뒤 정반대 방향으로 투표를 하도록 하면 국민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의회가 움직일 거라는 주장이다. 걸리버가 신랄하게 비꼰 300년 전의 영국 의회나 요즘 한국 국회나 본질적으로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싶다.
누군가는 소통의 요체를 해통(解痛)으로 풀이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얘기를 마음으로 듣고 체감한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자세로 꽉 막힌 국정을 풀 방법은 정녕 없는가.
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