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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4’ 농구 스코어?…배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 나왔다

입력 | 2013-11-27 07:00:00

대한항공 마이클(오른쪽)이 2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러시앤캐시와 경기에서 스파이크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 대한항공-러시앤캐시 역대 최다점수 듀스

한 세트 최다점수·최장시간 59분 기록도
초반 부진에 빠진 양팀 탈출구 찾기 고심
2R 맞대결은 대한항공이 3-0으로 승리

NH농협 2013∼2014 프로배구 V리그 1라운드가 끝난 뒤 두 팀이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를 밑돌았다. 신생팀 러시앤캐시는 6연패, 승점1, 최하위였다. 이런 상태라면 팀 창단식 때 최윤 구단주가 얘기했던 단체삭발이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졌다. 당시 최 구단주는 “팀이 10연패를 하면 전체가 삭발을 하겠다”고 했다. 우승을 노리는 대한항공은 4승2패, 승점12, 3위의 성적표다. 한선수의 공백이 컸다. 세터 황동일의 토스에 따라 팀이 롤러코스트를 탔다. 김종민 감독은 21일 한국전력과 경기 뒤 “우리 팀에는 신뢰가 필요하다. 앞으로 주전 세터는 황동일이다. 서로를 믿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분석은 그 다음이다”고 했다. 2라운드를 앞두고 계기가 필요했던 두 팀은 다르게 움직였다.

● 청평으로 번지점프를 하러 가는 러시앤캐시

러시앤캐시는 자신감이 키워드였다. 구단은 “팀워크를 강화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27일 오전 10시 청평 리버랜드에서 전 선수들이 번지점프를 한다”고 했다. 외국인선수 바로티를 제외한 16명 전원과 김세진 감독, 석진욱 코치 등도 강물에 뛰어내린다고 예고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반짝 유행했던 극기훈련이 떠오른다. 1988년 태평양의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과 오대산에서 극기훈련을 하고 돌아온 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 다른 구단들이 너도나도 따라했다. 선수들은 맨발로 오대산 눈 속을 걷고 영하의 날씨에 얼음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벤치마킹을 한 다른 구단들의 극기훈련은 강도가 점점 세졌다. 해병대 훈련에 참가했던 롯데 선수들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삼성은 부천에서 공수부대 훈련을 받았다. 점프훈련은 물론 공동묘지에 가서 담력을 키우는 훈련도 했다. 해외토픽에도 나왔던 극기훈련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 때 보여줘야 하는 담력은 공동묘지에서 보여주는 대담성과는 전혀 달랐다. 삼성의 공동묘지 훈련에서 가장 용감했던 선수는 이만수도 류중일도 아니었다. 프로무대에서 전혀 기록을 남기지 못한 무명 선수였다.

러시앤캐시는 27일 김세진 감독이 가장 먼저 번지점프를 한다. “어차피 쉬는 날 그냥 놀리기보다는 선수들에게 계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패배에 대한 부담을 터는 자신감과 서로의 신뢰다. 시즌 전에 이런 행사를 해야 옳았지만 선수들이 모일 기회조자 없었다.” 김세진 감독의 아이디어는 선수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길까. 번지점프 이후의 결과가 궁금하다.

● 신뢰를 화두로 삼은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은 2라운드를 앞두고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선수들 사이의 믿음이었다. 처음 주전을 차지한 세터 황동일과 공격수와의 관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는 배구는 책임감이 중요한 키워드다. 나쁜 결과에 대해 서로가 탓을 하기 시작하면 팀워크는 산산이 깨진다. 1라운드를 마친 뒤 김종민 감독은 팀이 그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예방차원에서 신뢰를 언급했다.

공격수들에게는 황동일의 토스 결과에 대해 탓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전까지 팀을 지켰던 한선수와는 다를 수밖에 없기에 시간을 가지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어떤 공이건 황동일이 올려주면 책임을 다하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황동일도 따로 불렀다. “공격수를 믿고 올려라. 훈련 때 동료들과 했던 약속대로 플레이를 해라. 세터는 경기 결과를 통해 말한다. 플레이를 통해 자신을 앞세우려고 하지 말라.”

그동안 김종민 감독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황동일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렸던 이유는 승리라는 결과에 자만할까봐 일부러 자극을 줬던 것이라고 프런트는 귀띔했다. 김종민 감독은 헌신과 신뢰를 선수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심고 2라운드를 시작했다.

● 2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만난 두 팀의 승패는

11월5일 안산에서 벌어진 1라운드 맞대결에서 대한항공은 첫 세트를 듀스 끝에 내주며 고전하다 3-1로 이겼다. 김종민 감독이 “수준 낮은 경기를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러시앤캐시의 패기에 고전했다. 26일 맞대결은 이전과는 다른 수준 높은 결과가 나왔다. 1,2세트를 쉽게 따낸 대한항공은 3세트도 매치포인트까지 앞서갔으나 러시앤캐시의 놀라운 반격에 주춤했다. 두 팀은 마치 농구스코어와 같은 56-54 스코어로 역사에 남을 듀스 명승부를 펼치며 팬들을 흥분시켰다. 역대최다점수 듀스(이전 남자부 2007∼2008시즌 삼성화재-현대캐피탈 챔피언결정전 1차전 41-39, 여자부 2005∼2006시즌 KT&G-도로공사 42-40)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한 세트 최다점수, 최장시간 세트(59분) 등의 기록도 함께 작성됐다. 대한항공은 5승2패(승점 15)로 리그 선두가 됐다. 신뢰와 끈기가 만든 1위였다. 번지점프를 앞둔 러시앤캐시도 비록 패했지만 투지만큼은 1등이었다.

인천|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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