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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만 주세요… 화음을 선물합니다”

입력 | 2013-11-22 03:00:00

경남 거창 주민 42명 정기연주회… 이장출신-중장비기사 등으로 구성
‘찾아가는 음악봉사’ 1년새 20차례




21일 경남 거창문화센터 공연장에서 열린 거창윈드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M&S무용단이 ‘스페인의 정열’ 연주에 맞춰 열정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이건형 지휘자. 거창=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21일 오후 7시 반 경남 거창군 거창읍 남쪽 김천리 거창문화센터 공연장. 1, 2층 좌석 700석을 지역 주민과 학생 등 관객들이 가득 메운 가운데 거창윈드오케스트라(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이건형·55)의 2회 정기공연 ‘겨울이야기’가 시작됐다.

독일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 카를 오르프가 1930년대 작곡한 직설적이고 간결한 칸타타인 ‘카르미나 부라나’를 시작으로 스웨덴 록가수 조이 템페스트의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비토리오 몬티의 ‘차르다시’ 등이 이어졌다. 독일 바이올린 연주자 페르디난트 다비트의 ‘트롬본을 위한 소협주곡’은 화성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수원대 전임교수인 우나이 우레초가 트롬본을 협연했다.

이날 무료 공연에는 거창음악협회 회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이혜명 씨도 출연했다. 8곡 연주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국내외에서 100차례 공연한 M&S무용단(단장 이명선)이 무대에 올라 ‘스페인의 정열’에 맞춰 플라멩코 춤을 선사해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곳곳에서 ‘앙코르’가 터져 나오자 거창윈드오케스트라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남진 히트곡 메들리,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1시간 40분의 공연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12월 8일 거창문화센터에서 창단공연을 가진 거창윈드오케스트라는 거창에 주소를 둔 성인 32명과 중고교생 10명 등으로 꾸려져 있다. 육군 군악대장 출신인 농부 정진섭 씨(53)는 호른 연주자 겸 부지휘자다. 거창중앙고에서 밴드부 활동을 했던 임상근 씨(50)는 트럼펫, 약사인 나소미 씨(41)는 플루트를 맡았다. 남자 간호사 정동명 씨(40)는 군악대 출신으로 트럼펫 연주자. 이 외에 대평리 이장 출신으로 트럼펫을 잘 다루는 마창갑 씨(48)와 중장비 기사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 이 감독의 제안으로 근질거리던 ‘손과 입’을 풀 기회를 가진 셈이다.

이 단체는 외부 지원 없이 ‘자급자족’하며 지역에 문화기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창단비용은 어른 단원들이 10만∼50만 원씩 부담했다. 월 2만 원씩 운영비도 낸다. 오케스트라 내 소모임인 색소폰 앙상블은 부업을 하며 일부 경비를 보태고 있다. 거창읍 중앙리에 140m²의 지하 공간을 임차해 매주 한 차례 연습한다. 팀파니와 큰북 등은 이 감독이 보증을 서고 1400만 원어치를 외상으로 샀다.

1년 동안 거창음악협회 송년음악회, 대한민국-캄보디아 신년음악회(프놈펜), 거창대성고 신입생 환영음악회, 군청 앞 ‘찾아가는 음악회’ 등 20차례의 음악 봉사를 했다. 중고교생을 단원으로 영입해 체계적인 훈련과 지도를 한다. 계명대 음대에서 트롬본을 전공한 뒤 대구시립교향악단 수석단원, 대구음악제 집행위원장을 지내고 귀향한 이건형 감독은 “거창 지역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는 점을 뿌듯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주민들에게 더 많은 음악을 선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창=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