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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여성 대통령의 시구(始球)

입력 | 2013-10-29 03:00:00


2010년 4월 6일 미국 워싱턴 시내에 있는 야구장 내셔널스 파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안내에 구장은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 내셔널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왼손잡이인 오바마가 던진 공은 너무 높아 영락없는 ‘볼’이었지만 아나운서는 “완벽한 스트라이크(Perfect strike)!”라고 해 웃음바다가 됐다. 오바마는 멋쩍은 듯 “왼손 투수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라며 조크로 받았다.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 연고를 둔 팀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는 것은 100년이 넘은 전통이다. 1910년 워싱턴 세너터스와 필라델피아 에이스 개막전에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공을 던진 것이 시초다. 오바마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빨간 상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모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것을 썼다. 하와이 태생이지만 시카고에서 오래 살았던 자신은 화이트삭스 팬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비난하는 미국인은 없다.

▷그제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구했다. 대통령은 ‘2013 KOREAN SERIES’라고 적힌 짙은 감색 점퍼를 입고 태극기가 그려진 푸른색 글러브를 꼈다. 운동화가 일본제인 아식스라는 것을 놓고 “왜 하필 일제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우리 국력에 아직도 그런 걸 따지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면 일본인들이 한류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하며 열광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지난 대선의 관권선거 정황에 대한 진실규명 요구에 대통령은 공을 던지는 시늉만 하고 새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은 ‘수사’라는 배트를 들고 휘두르는 척만 할까 걱정”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야구 시구를 놓고 너무 무거운 비판이다. 차라리 “여성 대통령이 공을 던지는 모습이 서툴지만 아름답다. 정치에서도 야구장에서 선물한 것 같은 웃음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점잖게 논평했더라면 어땠을까.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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