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쾌감회로 작동원리 쉽게 풀어 내… “1mm 벌레도 짜릿함 느껴”◇고삐 풀린 뇌/데이비드 J 린든 지음/김한영 옮김/312쪽·1만7000원/작가정신
작가정신 제공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로 신경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랑에 빠지면 뇌의 복측피개영역(VTA)에서 만들어진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측중격핵, 전전두피질, 배측선조체, 편도체에 분비된다. 이 영역이 바로 우리에게 황홀한 쾌락을 선사하는 뇌의 ‘쾌감회로’다. 사랑을 시작할 때 나타나는 이 반응은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투여할 때와 같다. 또 사랑에 빠지면 판단 중추의 하나인 전전두피질이 비활성화되고, 사회인지에 관여하는 측두극과 두정측두 결합부가 비활성화되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 기능이 왜곡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뇌 부위의 명칭들은 무시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쾌감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본능이며 그 본능은 뇌에 지배당한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저자는 “오르가슴은 가랑이가 아니라 뇌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녀가 신체 접촉 없이 생각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벌레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수억 년간 진화하면서 쾌감을 보존해 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먹고 마시고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이런 행동에 수반되는 쾌감은 강력한 동기 부여 기능을 한다. 심지어 흙 속에 사는 예쁜꼬마선충은 길이가 1mm에 불과하고 몸 전체에 뉴런이 302개뿐인데도 쾌감회로를 갖고 있다.
달고 기름진 음식 섭취, 댄스파티, 전자게임, 쇼핑, 오르가슴, 향정신성 약물, 도박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짜릿하게 느끼는 것들을 할 때 쾌감회로가 활성화된다. 쥐가 지렛대를 누르면 코카인이나 암페타민이 주입되는 실험을 통해 쾌감이라는 본능을 날것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 쥐들은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짝짓기를 하지도 않고, 심지어 새끼를 방치하면서까지 미친 듯이 지렛대를 눌러 댔다. 사실 이런 모습은 인간 중독자의 망가진 삶과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명상, 기도, 자선 행위를 할 때도 쾌감회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쾌감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시종일관 균형 잡힌 과학의 창으로 쾌감을 설명한다. 그는 “중독은 의지박약아가 겪는 병이 아니며 누구라도 중독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많은 인물이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였다. 샤를 보들레르(대마초와 아편), 올더스 헉슬리(알코올, 메스칼린, LSD), 지크문트 프로이트(코카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아편)도 모두 중독자였다. 또 뚱뚱한 사람을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도 잘못이다. 체중의 약 80%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이런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강력히 설정돼 있다.
그런 세상은 천국일까? 저자의 질문이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모든 종류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절제를 미덕으로 볼까? 인간 특유의 목표들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쾌감이 도처에 있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게 될까?” 무엇이든 자연의 뜻을 거슬러서 좋을 리 없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