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장유승 지음/364쪽·1만8000원/글항아리
책이 낡았다는 것은 당대에 그 책이 그만큼 인기 있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낡고 냄새나는 이런 책들에 시대의 역사성이 배어 있다고 믿는다. 글항아리 제공
물론 고서는 배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옛 어른들이 어떤 책을 읽고 배웠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가 ‘섭치’(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변변하지 않고 너절한 것)라고 부르는 이 책들은 무게를 달아 팔아도 몇 만 원 못 받을 가치를 지녔단다. 귀하게 대접받는 책도 많은데 왜 하필 쓰레기 고서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살짝 ‘덕후(오타쿠)’ 냄새가 난다.
그렇다. 세월이 흘러 책들이 낡았다는 것은 반대로 그 책이 당대에 그만큼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였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책에 등장하는 ‘대학’ ‘논어’ ‘통감절요’는 글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했던 책이다. 학문을 익히고 과거에 응시하고 마음을 닦기 위해 속지가 닳도록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나 현대로 치자면 ‘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만큼 팔리지 않았을까. 그럼 진짜 시대의 역사성이 밴 책은 바로 이 구린내 나는 책들이 아닐까.
요즘으로 치면 포켓북만 한 ‘백미고사(白眉故事)’도 같은 맥락이다. 해석하자면 고사성어의 백미를 모은 책인데, 학생들이 들고 다니며 손쉽게 인용할 고사를 찾아보는 용도다. 가난한 선비를 위한 방각본(민간에서 싸게 만든 책) ‘사서오경’이나 가정집마다 하나씩 구비했다는 의서 ‘의학입문’ 역시 쓰임새로 따지면 어느 책보다 가치가 컸다.
이런 상상도 가능하겠다. 집에 일기장이 있으면 잘 보관하시길. 수백 년이 흐르면 어떤 대작보다 비싸질 수 있으니. 하지만 시대를 바꾼 건 그 저렴한 몸값으로 세상에 지식을 퍼뜨린 섭치들의 힘이었다.
“권력자의 발버둥보다 강력한 것이 대중의 요구입니다.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려는 대중의 욕구는 권력자도 막지 못했습니다. …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지식 정보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어떤 이들은 신분 상승을 꿈꾸고 어떤 이들은 변화를 갈망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덕택입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