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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장관책임 통감” 사표

입력 | 2013-09-28 03:00:00

[복지공약 논란]
靑반려… 복지공약 후퇴 책임론 커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믿음을 저버렸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 장관으로 통했던 진 장관은 취임 6개월여 만인 27일 공식 사의를 밝혔다. 사퇴설이 불거진 지 5일 만이다. 주무 장관이 대통령의 뜻에 반해 사퇴하면서 기초연금 등 박근혜 정부의 대선 복지공약을 원안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데 따른 책임론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은 ‘장관 경질’이라는 최후의 정치적 카드까지 잃게 됐다.

이틀 전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설은) 없던 걸로 하겠다”며 만류했는데도 진 장관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해 사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무엇에 대한 책임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기초연금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초연금안 수정 靑과 마찰… 안팎서 꼬이는 朴정부 복지

정 총리는 “시급히 해결할 일이 많은 시기에 사표를 받을 수 없다”며 반려했고,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도 “사표 반려는 대통령 뜻”이라고 밝혔지만 진영 장관(사진)이 복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날 오후 8시경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가방을 들고 나서던 진 장관의 부인은 “(진 장관이) 지방에 가셨다”고 말했다.

진 장관이 사퇴를 결심한 일차적 이유로는 복지공약 이행의 어려움에 대한 주무 장관으로서의 책임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 당 정책위의장으로 대선공약 입안에 참여했고, 대선 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새 정부의 방향을 설계한 당사자로서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진 장관의 보좌관은 최근 “진 장관은 기초연금 정부안이 공약과 달라진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퇴의 결정적 이유는 ‘청와대와의 갈등’이라는 시각이 많다. 진 장관은 이달 초 국민연금과 연계해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공약과 달리 소득기준을 적용하는 안을 보고했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반발을 줄이자는 절충안이었지만 연금체계의 틀을 다시 짜겠다는 당초 안과 거리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공약한 틀로 안을 다시 마련해 오라’며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진 장관과 최원영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이 마찰을 빚었다는 말도 나온다.

진 장관의 성품에서 사퇴 이유를 찾는 시각도 있다. 진 장관과 친분이 있는 한 새누리당 의원은 “진 장관은 자기 스타일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뜻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내려놓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며 “장관 취임 한두 달 뒤부터 ‘그만두고 싶다’ ‘당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고 전했다. 진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에 동행한 기자들에게 “내가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란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고, 인원은 안전행정부가 쥐고 있고…. 복지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토로한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진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덜기 위해 사퇴를 결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안(案) 때문에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욕먹고 싶었겠느냐”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서울시장 출마를 생각해 봤다면 정치적 타격을 줄이려고 선제적으로 사표를 냈을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안대로 기초연금을 추진하려던 새누리당은 진 장관의 사퇴로 큰 혼란에 빠졌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까지 한 상황에서 주무 부서 장관이 사퇴해버려 대국민 설득의 동력을 잃게 됐다. 야당의 화살도 대통령으로 정조준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책임지는 게 아니라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박근혜호가 취임 후 가장 큰 풍랑을 만났는데 진 장관이 항로가 맘에 안 든다고 혼자 살겠다며 배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진 장관이 박 대통령이 아끼는 측근이어서 여권의 배신감은 더욱 크다. 당내에서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친박 안 하겠다고 나갔던 사람을 인수위 부위원장과 장관까지 시켜줬으면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끝까지 대통령을 호위하며 자신이 책임지고 정부안으로 국회와 국민을 설득했어야지, 어떻게 주군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

진 장관 사퇴 파동을 계기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성향의 복지공약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숙한 자세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들이 선거 때마다 쏟아지지만 실제 예산 편성 단계에선 대부분 공약이 축소되거나 폐기되는 구조적 한계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 공약이 나오는 즉시 관련 재원이 얼마나 필요하고, 이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검증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훈·권오혁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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