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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삼국지와 세 리더십

입력 | 2013-09-28 03:00:00


동일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해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동일한 전쟁터에서도 영웅의 전쟁이 있고, 졸장부의 전쟁이 있습니다. 이긴다고 다 같은 승리가 아니고, 진다고 해서 다 같은 패배가 아닙니다. 늑대의 몰락과 백호의 몰락은 여운이 다릅니다.

감성과 직관의 천재 이현세가 최근에 삼국지를 마쳤습니다. 오래전 고우영의 삼국지가 조조에게 공을 들였다면 이번에 이현세는 공명과 유비의 관계에 공을 들였네요. 매력적인 순정파 마초 까치의 아버지답게 조자룡과 관우에게 공을 들이리라 예상했는데, 무심한 세월이 까치의 열정도 정화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삼국지에선 리더십의 양태가 분명히 보입니다. 피에 굶주린 늑대의 리더십이 있고, 짱이 되고자 하는 천재 영웅의 리더십이 있고, 군자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늑대 같은 여포나 동탁은 제 욕심뿐입니다. 욕심이 앞을 가려 사람을 이용하려 할 뿐 사람을 대접할 줄 모릅니다. 이현세의 표현이 재미있네요. ‘이유는 사악하고, 동탁은 포악하다. 여포는 무지막지하다. 셋은 궁합이 딱이다.’ 이런 사람들이 힘을 가진 세상엔 어리석은 사람들만 이리떼처럼 모여듭니다.

반면 배포 있고, 머리 좋고, 안목 있는 영웅 조조는 늘 외롭습니다. 영웅을 대접할 줄 아는 조조인데도 그 주변엔 왜 영웅이 없을까요? 바로 의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속지 않으려고 좋은 머리를 굴려 피라미들을 걸러내는 데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천지를 삼켰다가도 토해낼 뜻이 있는 영웅들이 신의를 평가하는 게 일상이 된 의심 많은 이의 울타리에서 어떻게 날개를 펼까요? 신의는 일방적이지 않은데! 성에 차지 않는 조조가 늘 두통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관우와 장비, 조자룡과 공명 같은 영웅들이 하나같이 그 인연을 소중히 하는 유비의 리더십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유비는 믿을 줄 알고 맡길 줄 압니다. 신의를 지키느라 자주 손해를 보지만 지나 놓고 보면 인물이 남는 그의 어리석은 지혜는 아마도 시간이 나면 짚신을 삼는 그 비생산성에서 온 것은 아닐까요? 어지러운 때일수록 마음을 단순하게 가다듬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하니까요.

주눅 든 호랑이는 이리보다 못한 법입니다. 하늘 같은 아비 밑에서 졸장부가 된 유선이 공명이 던지는 눈물의 출사표를 어찌 이해하겠습니까? 내 자식의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으면, 원래 천하는 만백성의 것이니, 공명 스스로 촉의 주인이 되라는 유비의 유언이 있었음에도, 죽을 때까지 유선을 지키는 공명의 신의는 유비와 닮았습니다. 마음으로 세상을 공유한 자들은 죽음으로도 갈라 놓을 수 없는 겁니다.

상처가 훈장이 된 영웅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패배해 본 적이 없는 영웅이 없고 승전의 기쁨을 오래 누린 영웅도 없네요. 큰 기쁨은 있어도 긴 기쁨은 없다는 살로메의 말이 실감납니다.

영웅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조조와 유비와 손권의 싸움이 꿈이었다는 듯 패권은 엉뚱하게도 사마씨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래도 소인배가 아닌 영웅과 함께하고 싶은 것은 꿈같은 인생이어도 아름다운 꿈을 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