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그런데 이 무한책임회사에는 대통령이라는 최고경영자(CEO)도 있고 국민이라는 소액주주들도 있지만 실제 운영은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회사가 정책을 결정하거나 그것을 집행할 때 핵심적 영향력이 관료로부터 온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정치인이 정책을 결정하고(maker) 관료는 그것을 전달받는 것처럼(taker) 보이지만, 실제는 그 반대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대통령마저 관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국방부 관료들은 남북한의 군사력을 단순 비교해 국방 예산의 증액을 요구했다.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치며 남북한 군사력에 나름대로 지식을 갖고 있던 대통령은 ‘이들이 나를 민간인 취급하고 있구나’ 하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훗날 회고록에 썼다.
나라의 원래 주인인 국민과 국정을 위임받은 대통령의 처지에서, 관료를 이해하고 움직이게 하는 노하우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성공한 시대, 어떤 성공한 대통령도 모두 관료를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러한 사실을 잘 느끼고 있는 듯하다. 종종 “정책은 결정하는 게 10%이고, 집행하는 게 90%”라는 언급을 한다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관료를 다루는 정책은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관료사회를 견제하고 격려하여 변화를 추동하는 시스템을 강력히 구성하지 않고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이 끊임없이 정부개혁위원회나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각 부처를 견제하고 사회적 요구를 투입시키며, 귀찮을 정도로 개혁을 주문해 온 것에 비하면 현 정부의 태도는 대조적이다. 각 부처에 그러한 장치를 붙여놓지 않으니까 대선 때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이 아직도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를 비판하는 역할을 외롭게 하고 있고 그 내용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뒤늦게 청와대가 ‘정부3.0’을 내놓았지만, 부처 간 협력이라는 기능적 측면에 치우쳐 있다. 이대로 가면 자칫 역대 정부 중에서 가장 일찍 관료들에게 포획되어 권력누수를 겪는 정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벌써 청와대는 출범 5개월도 안 된 시점에 일부 부처 관료들이 장관을 왕따시키고 있다고 경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바 있다.
싫든 좋든 관료들을 뛰게 해야 한다. 비서실장 경질로 부처 장악력을 높이려는 수준을 넘어 관료사회에 민주적 정당성을 투입하고, 사회적 요구를 전달하며, 관료들의 사기를 북돋워 개혁의 선두에 서도록 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한 시스템에 의해 부패가 극복되고 복지부동이 예방되며 국민을 위한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다. 창조경제는 이런 토대 위에서만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