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중 건국대 교수
창조는 창조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절대 권력자가 창조하라고 하면 창조가 되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정책당국은 강요된 창조를 위해 모든 국민을 창조신드롬에 걸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의 목표를 대학입시로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부가 발표하는 각종 교육정책이 대학입시와 관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합작품입니다.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이해 관계자들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무슨 대책입네 하고 순식간에 발표하는 것이지요. 물론 고민했겠지요. 어떻게 하면 지난 정부의 색깔을 완전히 지우고 기상천외한 정책을 창조할 것인지를 말이죠.
그러니까 결론은 고민을 안 한 겁니다. 창조교육의 입안자들도 창조교육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창조를 교육에다 무례하게 갖다 부치는 설익은 창조를 감행한 것입니다.
진실로 창조교육을 위해서는 교육부를 폐지하는 창조적 발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교육을 정치적 목적과 관료적 방법으로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안 합니다. 부모들도 더이상 공부와 관련해서 ‘관심 끝’입니다. 내가 해 줄 일은 다했다는 것이지요. ‘창조 끝’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들의 귀에 더이상의 지식공부는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공부는 이미 다 배웠기 때문입니다. 수학보다는 산수가 더 필요한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수준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걱정합니다. 미적분을 모르고 자연계열의 대학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오늘의 중등교육과 대학입시 제도를 비판합니다.
중력을 몰라도 넘어지지 않고 걸어 다니며, 미적분을 몰라도 아파트의 대지지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인문학적 소양이니 철학적 사고이니 미학이 어쩌니 하면서 대단한 것을 가르쳐야만 대학인 척하는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지식보다는 꿈을 얘기하는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서서히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