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소비자 경제부 차장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누리꾼들의 새로운 놀잇감으로 떠오른 젊은 래퍼들의 ‘디스 배틀’을 보면 그날이 벌써 코앞에 닥친 것 같다. ‘결례’라는 뜻의 영어 ‘disrespect’의 준말인 ‘디스(Diss)’는 상대방의 허물을 랩에 담아 공격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힙합 문화다.
지금은 국제스타가 된 가수 싸이가 2010년 내놨던 랩송 ‘싸군’에도 거친 내용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줌의 잿더미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해서 어쩌니, 욕 들어 처먹어도 싸군” 등의 내용처럼 싸이가 디스한 대상은 대마초를 피우고, 병역법을 위반했던 과거의 어리석은 자신이었다. 같은 분야의 동료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막말이 오가는 최근의 디스 배틀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역시 지난달 초 새누리당 청년 부대변인으로 내정됐던 인물은 예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했던 막말이 문제가 돼 자진사퇴했다. 지난해 3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이름까지 거론하며 “여자가 날뛰면 나라가 망한다” 등의 막말을 한 것이 사달이 됐다. 최근 새누리당은 2030세대를 대상으로 상금까지 걸고 ‘새누리를 디스해라! 막말 쌍욕 대환영’이라는 이색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욕설이나 막말을 내뱉는 이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이나 주변의 스트레스 총량은 증가한다. 폐수를 배출하는 공장을 세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을 때 나머지 사람들은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외부 비(非)경제’ 효과나 마찬가지다. 전 사회의 정서적 외부 비경제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욕설, 막말이다.
디스가 게임이 되고, 막말이 일상화되는 사회에서 막말에 타고난 재주가 없어 일방적으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오래전 외국 잡지에서 읽었던 글에서 나 나름의 답을 찾았다. 내용은 이렇다.
1970년대의 어느 날 영국 런던 시내를 오가는 버스 안에 점잖은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정류장에 차가 멈추고 금발의 젊은 여성이 버스에 올라 남성 옆에 섰다. 남성은 일어나 손짓으로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다. “전 제 발로 얼마든지 서서 갈 수 있어요. 제가 단지 숙녀(lady)라는 이유로 자리를 양보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요”라고 쏘아붙인 것. 그 여성은 당시 서구사회를 풍미하던 페미니즘의 신봉자였다.
박중현 소비자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