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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단체 활개쳐도 막을 길이 없다

입력 | 2013-09-04 03:00:00

대법 판결에도 국내 5곳 버젓이 활동… ‘범죄단체 해산’ 법안은 넉달째 계류
獨, 강제해산… 美선 ‘공산’용어 금지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등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25개 단체 가운데 5개(국내 활동 기준)가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이들 단체를 강제 해산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가 향후 이적단체 등으로 확정돼도 활동을 막을 수 없는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률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로 확정 판결을 받은 조직은 각각 12개와 13개다. 반국가단체는 정부를 참칭(僭稱·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름)하거나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국내외 단체를, 이적단체는 반국가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하고 동조·선동하는 단체를 뜻한다. 공안 당국은 이 가운데 반국가단체 3개와 이적단체 5개가 확정 판결이 났음에도 여전히 같은 이름을 쓰며 동일한 목적의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반국가단체 3개는 조선노동당(북한) 조총련(일본) 한통련(일본)으로 한국 정부의 강제력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있고, 국내에서 직접 활동할 수 없는 조직이다. 하지만 국내에 주요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등 이적단체 5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범민련 해외본부와 남측본부는 각각 1994년과 1997년 이적단체로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인터넷 홈페이지와 모바일웹을 운영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 후원을 유도하고 있다.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지난해 3월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무단 방북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공안 당국은 나머지 17개 단체 구성원들도 단체 이름만 바꾸거나 다른 조직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는 2010년 7월 대법원의 이적단체 확정 판결을 받은 뒤 ‘민권연대’로 이름만 바꿨고, 2009년 1월 이적단체로 확정된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도 ‘한국청년연대’로 개명했다. 2000년 10월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잔존 세력이 모여 RO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법률적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올 5월 ‘범죄단체의 해산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4개월째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이 법안은 법원에서 반국가단체 또는 범죄 목적 단체로 판명된 단체들을 강제 해산하고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킬 수 있도록 했다. 심 최고위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가 변란을 꾀하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단체는 당연히 소멸돼야 한다”며 “향후 이들의 활동이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체 조직 설립을 막는 등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독일과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도 국가의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단체들에 대해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독일은 ‘결사법’에서 이런 단체에 대한 강제해산권 등을 명시하고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못하도록 한 공산주의자규제법(Communist Law)을 유지하는 것도 자유와 생존이라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최창봉·권오혁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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