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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촛불집회 고교생에 다가간 ‘쌤’들, ‘이석기 키즈’를 키운다”

입력 | 2013-09-02 03:00:00

‘청소년 시국회의’ 탈퇴자들이 밝힌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과의 결별 과정




“내란 음모 조작 말라” 8월 31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통합진보당 주최로 열린 ‘국정원 내란 음모 조작과 공안 탄압 규탄 대책위원회’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가면을 쓴 채 장난감 총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한 참가자는 다른 손에 김일성 부자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내란예비음모 물총부대 대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국정원 수사를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날 집회에는 총 1500여 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저희는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소속 성인들의 개입을 막으려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학생이 주체인 새로운 단체를 설립할 것입니다.”

국가정보원 개혁을 요구하며 촛불집회에 참여해온 ‘청소년 시국회의’가 8월 29일 트위터에 이런 내용의 트윗을 올리며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주로 중고교생들로 이뤄진 청소년 시국회의는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을 8월 21일 찾아가 “힘내라”며 빵을 선물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청소년 모임이다.

고교생들이 ‘희망’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결별을 선언한 배경에 대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수사 중인 공안당국도 주목하고 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희망은 건전한 청소년 운동을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표방하지만 그동안 행적을 보면 일부 청소년들이 이념 교육을 받은 뒤 옛 민주노동당과 현 통합진보당에 진출하는 통로가 됐다”고 주장했다.

희망은 2000년 11월 출범한 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반미 촛불집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지난해 통진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등에 참여했다. 또 청소년 관련 행사를 진행하며 서울시의 재정지원, 일부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 “이념에 물드는 게 싫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그동안 청소년 시국회의에 참여해온 고교생 7명을 8월 31일 만났다. A 군(18)은 “순수한 청소년 단체로 시작한 시국회의가 통진당 청년당원들과 ‘희망’의 청소년 회원들 때문에 정치색을 띠는 게 싫었다”고 밝혔다.

청소년 시국회의는 7월 6일 출범 당시 A 군처럼 국정원 규탄집회에는 참여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려는 고교생 24명, 희망에 소속된 고교생 12명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일명 ‘쌤(선생님)’으로 불리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성인 활동가 6, 7명도 비공식 멤버로 참여했다. 이 성인 활동가들은 ‘희망’소속 청소년들을 지도해 왔으며, 시국회의 소속 고교생들에게 집회 신고나 기타 법률문제에 대해 조언해주겠다는 명분으로 각종 회의에 참가했다.

A 군은 “지난달 초 활동가들이 청소년 연합단체인 ‘전국민주주의수호청소년연합’에 들어가자고 제안했을 때 이들의 정체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연합을 구성하는 단체가 희망의 서울 및 광주지부, 희망 계열인 청소년문화예술센터였던 것. B 군(18)은 “처음에는 활동가들이 어디 소속인지도 몰랐는데 스마트폰과 노트북, 문서 파일 등에 통진당 마크인 보라색 물결무늬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고 통진당 당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희망 측 성인 활동가들은 학생들에게 ‘통진당 청소년위원회’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고 학생단체와 통진당의 연대를 강력히 주장했다고 시국회의 고교생들은 말했다. C 군(18)은 “7월 26일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집회 때 활동가들은 학생들에게 ‘빵빵’이라는 노래의 안무를 익혀 공연하게 했다”며 “빵빵이 통진당의 대선 유세곡이라는 것은 공연이 끝난 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알게 됐다”고 말했다.

A 군 등은 “청소년만의 단체를 만들기 위해 성인 활동가들은 빠져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며 “청소년 시국회의가 전국민주주의수호청소년연합에서 빠져 나가는 것도 방해해 결국 해체 선언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희망 출신 통진당에 대거 진출

공안당국은 희망이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때 주한미군 철수 등을 외치는 등 지난 10년간 좌파 진영의 주장을 답습해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촉구,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 지지 성명 발표, 국가보안법 폐지 지지 선언 등 진보진영과 한목소리를 냈다.

공안당국은 희망의 청소년 회원들이 성인이 된 뒤 희망의 운영위원, 사무국장 등을 거쳐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과 지금의 통진당 당원으로 진출하는 점도 주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난초 통진당 전 청소년위원장(31), 백성균 기획팀 국장(29), 윤수근 홍보미디어실 국장(35) 등은 중고교 시절 희망에서 활동하다가 통진당의 전현직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신 전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민노당의 ‘19대 총선 비례대표 조작’ 및 ‘중앙위원회 폭력사건’ 당시 이석기 의원을 지지한 바 있다. 백 국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당시 희망의 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웹사이트 ‘미친소닷넷’을 개설해 시위에 참가할 학생을 모집했다.

취재팀이 만난 시국회의 고교생들은 “희망 측 학생들 가운데에는 희망이 제작하는 인터넷신문인 ‘1318바이러스’의 청소년 기자들이 있었고, 이 인터넷 신문의 편집장은 시국회의에 성인 활동가로 참여한 문일평 씨다”고 말했다.

현재 희망의 이사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9대 위원장(2001∼2002년)을 지낸 이수호 씨다. 또 전교조 소속 K 및 L 교사가 이사로, 또 다른 K 교사가 감사로 등재돼 있다. 희망은 출범 당시 “전교조 소속 해직 교사들을 복직시키라”고 요구했다.

○ 서울시, 대기업도 희망에 협찬

희망은 2003년 10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희망카페’의 ‘청소년 운영진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고 중3∼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았다. 이들은 공고문에서 자신들이 종로구 자원봉사단체에 등록돼 있으며 안전행정부가 운용하는 ‘1365자원봉사’ 포털 사이트에서 봉사활동시간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A 군은 “청소년들 가운데 (희망이) 이념 또는 정당과는 무관한 일반 청소년단체로 알고 들어가 정식 회원이 된 사례도 있고, 뒤늦게 실상을 알고 두려워 빠져나오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이 희망을 지원해준 사례도 적잖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서울의 16개 청소년단체 및 비영리 민간단체 등에 부여하는 ‘청소년 휴(休)카페’ 가운데 하나로 희망을 선정해 4000만 원을 지원했다. 올해 희망이 주최한 5·18행사에도 서울시가 공식 후원 기관으로 참여해 1200만 원을 지원했다. 또 올해에는 총사업비가 1억9200만 원에 이르는 ‘서울시 청소년 동아리 지원사업’의 위탁기관으로 희망을 선정했다. 희망의 이수호 이사장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이 밖에 한 대기업그룹은 2002년 희망과 전교조 서울지부가 공동주최한 행사에 협찬금을 내줬다.

이수호 이사장은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희망은 학생 및 자체 운영위원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통진당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서울시 지원사업은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선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이상현 희망 사무국장과 문일평 1318바이러스 편집장, 신난초 통진당 전 청소년위원장 등의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이들은 “통화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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