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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 카페]피폭 참상 그린 만화 ‘맨발의 겐’ 열람제한 철회

입력 | 2013-08-31 03:00:00

일본군 만행 가리려던 日교육당국, “표현 자유 억압” 비판여론에 무릎




히로시마(廣島) 피폭의 참상을 그린 만화 ‘하다시노 겐(맨발의 겐)’이 최근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시마네(島根) 현 마쓰에(松江) 시 교육위원회가 초중학생이 이 만화를 열람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가 사회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최근 열람 금지 조치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화의 무대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이 뚜렷해진 1945년 히로시마.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주인공 겐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 등 3명은 집에 깔린 채 불타 죽었다. 겐도 피폭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졌다.

만화는 원폭이 투하된 당시 모습을 무척 자세히 소개했다. 열폭풍으로 녹아 내린 피부, 시체에 끓는 구더기, 폐허가 된 시가지…. 겐은 원폭에 살아남은 엄마, 누나와 함께 살았다. 죽은 남동생을 꼭 빼닮은 원폭 고아도 식구로 맞아들였다. 겐이 처한 상황은 비참했지만 그는 항상 밝게 살면서 어려움을 이겨 낸다.

이 만화는 1973년부터 14년 동안 일본 만화잡지 ‘소년점프’에 연재됐다. 일본 만화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일본에서 1000만 부 넘게 팔렸다. 한국 등 20여 개국에서 번역됐으며 세계 곳곳에서 출판됐다. 지난해부터 히로시마 시 각급 학교의 평화교육 교재로도 채택됐다.

만화를 그린 나카자와 게이지(中澤啓治·지난해 73세로 사망)는 자신의 체험을 만화에 녹여 냈다. 그는 폭심지에서 불과 1.3km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학교 담벼락 뒤쪽에 있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은 원폭이 터졌을 때 사망했다. 만화와 똑같다. 어머니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66년 숨졌다. 나카자와 씨는 화가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만화를 그렸다.

지난해 12월 마쓰에 시 교육위원회는 초중학교 교장회의에서 ‘맨발의 겐’을 학생들이 열람하지 못하게 하도록 지시했다. 잔혹한 장면 묘사가 이유였다. 실제 만화에는 일본군이 아시아인의 목을 재미 삼아 자르는 장면,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는 장면이 실려 있다.

하지만 교육위의 열람 제한 조치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비판 여론이 전국에서 터져 나왔다. 잔혹한 장면은 일부에 그치고 전체 내용은 평화적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묘사한 내용이 불편했기 때문에 열람을 제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만화가협회는 26일 마쓰에 시의 조처가 ‘표현의 자유 규제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할 만한 일’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결국 마쓰에 시 교육위는 26일 열람 제한을 철회했다. 28일 아사히신문의 독자투고란에 실린 36세 주부의 글에서 그 소감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저는 히로시마 출신이지만 원폭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초중고교에서 여름에 ‘평화학습’에 참가해 원폭에 대해 배웠습니다. ‘맨발의 겐’도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어린이가 만화를 읽고 충격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평화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열람 제한 철회 결정을 환영합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